1907년 10월 28일, 김주식이 자신의 장인에게 보내는 안부편지로, 상주가 자신을 찾아와 주어 장인의 안부소식을 듣고 위로가 되었다는 마음과 자신의 근황에 대해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907년(융희 1) 10월 28일, 金胄植이 장인에게 보내는 안부편지이다. 상주가 자신을 찾아와 주어 장인의 안부소식을 듣고 위로가 되었다는 마음과 자신의 근황에 대해 편지를 쓴 것이다.
편지 서두에서 김주식은 아직까지 장인을 뵙지 못한 것을 세상 탓이라고 핑계대기만 하고, 편지로 안부를 대신하는 것도 인편을 찾아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40리 정도 되는 짧은 거리의 소식이 궁벽하고 먼 거리의 소식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런 차에 뜻밖에도 상주가 빙 둘러 찾아와 주셔서 당신의 안부를 물어보았다고 하였다. 그동안 격조한 사이에 당신 뿐 아니라 당신의 손자도 그의 부모와 식구들이 편안하게 잘 있고, 집안의 여러 식구들도 고루 편하신 것을 알아서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만 질녀가 근래에 상을 당한 것은 너무나 참혹하여 그 안부는 오히려 돌볼 겨를이 없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노인을 모시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겨우 큰 탈은 면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보름 전에 남산의 전소에 참여하고 빙 둘러서 저쪽 지방에 인사를 드리는데 열흘을 소모하다가 돌아갔다고 하면서 이 마을에서 타격을 입은 것과 온 마을이 도망친 것은 무슨 상황인지를 물었다. 며칠 사이에 비로소 안정되었지만 이렇게 험한 세상에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어떻게 세월을 보낼 수가 있겠냐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겁이 난다고 하였다.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소를 다녀 온 후라고 한 것과 마을이 타격을 받은 것, 온 마을이 도망을 쳤다고 하니, 이 시기에 가문끼리의 산송 문제가 빈번하게 많이 일어났으니 아마도 산송관계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金室을 가을 초에 가서 얼굴을 보았으나 그 아이의 골격이 비범하니 진실로 기특하고 다행이었다고 하였다. 달포 전에 그의 안부를 들었으나 이곳에 그믐날 壻君이 올 생각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이처럼 어수선한 중에 과연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한번 나아가 문후를 드리는 것은 어찌 그 뜻이 없겠습니까마는 문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으면서 산 밖에 한 걸음도 나가려고 하지 않은지가 이미 몇 달이 지났으니 어느 때에 편안한 날을 얻어서 두루 인사를 드릴 수 있겠냐고 하였다. 소식을 전하러 온 상주가 하룻밤을 묵고 곧 떠나니 바빠서 몇 자를 쓰고 이만 줄인다고 하면서 문후 드리는 예를 갖추지 못하니 삼가 잘 살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편지를 보낸 金胄植(1859-1916)은 조선말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義城, 字는 舜敎, 號는 順窩이다. 아버지는 金恭洛이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順窩集』이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