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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이수영(李秀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86.4776-20120630.0487257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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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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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수영, 이수악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886
형태사항 크기: 23.5 X 7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오촌 재령이씨 존재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6년 이수영(李秀榮) 서간(書簡)
1886년 11월 22일에 이수영이 곧 유배지로 출발하는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이다. 북쪽 변방으로 유배를 떠나는 상대방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유배동안 마음을 편히 먹고 행동을 조심하기를 당부하면서 이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좌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출발 시기에 대해 묻고, 출발하기 전에 사당에 고하는 내용을 제안하였다. 자신은 전별하는 자리에 가봐야 하지만 그 또한 어렵다고 하면서, 만약 경유하여 간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86년 11월 22일, 이수영이 유배지로 출발을 앞둔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86년(고종 23) 11월 22일에 李秀榮(1845-1916)이 유배지로 출발을 앞둔 族人 李壽岳(1845-1927)에게 보낸 편지이다.
북쪽 極邊에 유배지가 정해져서 떠나는 상대에게, 상대의 돌아가신 조부가 이른바 "하늘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면 오늘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天如可訴無今日]"는 상황과 같다고 하면서, 그저 울면서 짐을 꾸릴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노정은 어느 쪽으로 잡으려고 하는지를 묻고 곧바로 북쪽으로 가는 것은 눈 쌓인 변방이라 어렵겠고, 그렇다고 명을 받고 집에서 해를 넘길 수는 없으므로, 즉시 떠나 서남쪽으로 우회하여 그 곳에서 조금 지체하면서 해가 바뀌기를 기다려 조금씩 서울 쪽으로 올라온다면, 極寒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상대의 몸은 혼자의 몸이 아니라고 환기하였다. 이제 한 번 문을 나서면 몇 년이 지나야 풀려서 돌아올 것인데, 그 사이에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행동을 조심하기를 당부하면서, 잘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상대가 가문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누이 말하고 조상의 보살핌이 있어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좌절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출발은 언제 하는지를 묻고, 출발하기 전에 사당에 고하는 내용을, "불초한 후손이 모함을 받아 갑자기 법망에 걸려 길주로 유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북쪽 3천리 먼 곳이라 돌아올 기약이 아득하니 제가 없는 동안의 제사는 아들 훈발이 행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기대를 저버린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不肖孱孫 无妄坐罪 忽絓文網 流竄吉州 窮北三千 歸期杳然 未間香火 有男塤發 言念至此 辜負懍怵]"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면서, 그렇게 고하면 하늘에 계신 영령께서도 측은하게 여겨 보살펴 주실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80세 노인의 몸으로 풀려날 때까지 살 기약이 없으니 마땅히 전별하는 자리에 나아가야겠지만 그 또한 어렵다고 하면서, 만약 우회해서 노정을 잡으면 경유해서 한 번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6년 이수영(李秀榮) 서간(書簡)

岳君忙展
三家食有日 而平安與未 未暇問 北
徼窮髮 羈管已定所 正先王考所謂
天如可訴 無今日者 只自飮泣治任而已
奈何奈何 將取路何方 欲直北 則雪塞行不得
旣不敢經歲 宿命于家矣 卽當離家 迂
路西南 而少焉遲滯于此間 以俟獻發 稍稍踰
嶺向京 以免其衝冒谻寒 乃可以保得殘喘 祗
達嚴指 未知君成算 亦出於此耶 平日學
究之力 正於此處驗也 世家承受之韻 門親期
許之望 斷斷乎君之一身 則惟君一身 便非君
之所私有也 自今一出門 而至于幾歲月宥還之
日 其間一語默一動靜之造次顚沛 無非君安
身立命 戰兢自持 于以爲持世家酬門親之地也
然則 君所以自愛 而將攝之者 當何如哉 因有君素
患難已定之見 豈規規耋言之是待 衰腸遠
別 自不勝過慮津津 而猶不敢作 非復別離時
等悲辭苦語 以凄楚夫遠役之情也 然目今門戶
殘弊到骨 而所嘗牽補而扶持者 惟恃君在
耳 君不可一日無也 而遽有此行焉 君賜環之前 吾
若遲延于世 則凡門內大小事 與老物之相長 更
將誰掎而爲心也 在君家事 則聞其主器頗確實
可以幹父之蠱 是可慰已 人生此世百年之內 所
遭險巇何限 固有幸不幸於其間 而惟在自我制
心飭躬 隨遇遣過之如何 亦非臨時强勉之可
能 須有素得乃可爾也 且念吾君家先 積累餘
蔭 不宜有此 偶然撞着之厄 豈可久哉 從當有陰佑於
冥冥 而天定如幾 幸勿沮喪頓挫 而益勵平日
邁往之氣 當以前頭有樹立爲心 則自當日用之間
愁魔退聽 而靈坮泰然矣 發程將以何間 臨發
拜辭于祠下而告之 若曰不肖孱孫 无妄坐罪
忽絓文網 流竄吉州 窮北三千 歸期杳然 未間香火
有男塤發 言念至此 辜負懍怵云云 如何 在天
之靈 其亦惻然於監臨矣乎 顧玆八耋危喘 朝
暮人耳 無望其迎勞乎他日宥還 則思欲扶舁
就訣于飮餞之席 而此亦末之難矣 倘如向所云迂
路作行 可得徑由一面 此姑不盡敍
丙戌至月卄二 族老 秀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