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11월 22일, 이수영이 유배지로 출발을 앞둔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86년(고종 23) 11월 22일에 李秀榮(1845-1916)이 유배지로 출발을 앞둔 族人 李壽岳(1845-1927)에게 보낸 편지이다.
북쪽 極邊에 유배지가 정해져서 떠나는 상대에게, 상대의 돌아가신 조부가 이른바 "하늘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면 오늘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天如可訴無今日]"는 상황과 같다고 하면서, 그저 울면서 짐을 꾸릴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노정은 어느 쪽으로 잡으려고 하는지를 묻고 곧바로 북쪽으로 가는 것은 눈 쌓인 변방이라 어렵겠고, 그렇다고 명을 받고 집에서 해를 넘길 수는 없으므로, 즉시 떠나 서남쪽으로 우회하여 그 곳에서 조금 지체하면서 해가 바뀌기를 기다려 조금씩 서울 쪽으로 올라온다면, 極寒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상대의 몸은 혼자의 몸이 아니라고 환기하였다. 이제 한 번 문을 나서면 몇 년이 지나야 풀려서 돌아올 것인데, 그 사이에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행동을 조심하기를 당부하면서, 잘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상대가 가문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누이 말하고 조상의 보살핌이 있어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좌절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출발은 언제 하는지를 묻고, 출발하기 전에 사당에 고하는 내용을, "불초한 후손이 모함을 받아 갑자기 법망에 걸려 길주로 유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북쪽 3천리 먼 곳이라 돌아올 기약이 아득하니 제가 없는 동안의 제사는 아들 훈발이 행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기대를 저버린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不肖孱孫 无妄坐罪 忽絓文網 流竄吉州 窮北三千 歸期杳然 未間香火 有男塤發 言念至此 辜負懍怵]"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면서, 그렇게 고하면 하늘에 계신 영령께서도 측은하게 여겨 보살펴 주실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80세 노인의 몸으로 풀려날 때까지 살 기약이 없으니 마땅히 전별하는 자리에 나아가야겠지만 그 또한 어렵다고 하면서, 만약 우회해서 노정을 잡으면 경유해서 한 번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