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2월 8일, 이수영이 선조인 이현일 선생의 신원과 관련하여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5년(고종 12) 2月 8日에 族叔 李秀榮(1845-1916)이 선조인 葛庵 李玄逸(1627-1704) 선생의 신원과 관련하여 李壽岳(1845-1927)의 客舍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겨울에 송별하고 새해도 벌써 2달이 지났다고 하고, 중간의 소식은 전해 들었으나 도성에 들어간 뒤의 소식은 못 들었다고 하였다. 논의를 꺼낸 지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하고, 세도가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해도,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독려를 하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무리하게 대처하지는 말기를 당부하였다. 이번 봄 陵幸 때 임금께 하소연할 길이 있을 듯하니, 그 訟錄의 내용은 반드시 깊이 주의하여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상대의 去就는 현 疏儒의 進退와 같이 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선조인 葛庵 李玄逸(1627-1704) 선생의 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 때문에 楮谷의 인편을 재촉해 옷가지 등을 마련해 오라고 했는데, 公鎭 같은 諸君들이 소홀하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각 마을은 편안하다고 하고, 자신은 노쇠함이 날로 심해지는데, 갈암 선생의 신원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염려된다고 하였다. 현재 영남 사람 중에 힘을 써 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典洞의 대감은 실권이 있는지를 묻고, 들은 소식이 있거든 하나하나 알려달라고 하였다.
楮谷에서 심부름꾼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어 수령의 행차 편에 보내는데, 받아보았는지를 물었다. 함께 고생했던 여러 형들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하고, 景理 金相燮 , 國亨 洪應龜 같은 이들에게는 마땅히 편지를 보내 정을 표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한이 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