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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이수영(李秀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75.4776-20120630.0487257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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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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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수영, 이수악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875
형태사항 크기: 24 X 90.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오촌 재령이씨 존재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5년 이수영(李秀榮) 서간(書簡)
1875년 2월 8일에 이수영이현일 선생의 신원과 관련하여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해가 두 달이 지났는데 중간의 소식은 들었지만 도성에 들어간 뒤의 소식은 못 들었다고 하였다. 세도가의 반대로 논의가 몇 달 동안 결론나지 않고 있지만 포기하거나 무리하게 대처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이번 봄 임금의 행차 때 하소연할 길이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은 늙고 쇠하여 이현일 선생의 신원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걱정된다고 하면서, 영남에서 힘 써줄 수 있는 사람과 전동 대감의 실권 여부 등에 대해 물었다. 이외에도 수령의 행차 편에 보낸 편지를 받았는지 묻고, 함께 고생한 형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75년 2월 8일, 이수영이 선조인 이현일 선생의 신원과 관련하여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75년(고종 12) 2月 8日에 族叔 李秀榮(1845-1916)이 선조인 葛庵 李玄逸(1627-1704) 선생의 신원과 관련하여 李壽岳(1845-1927)의 客舍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겨울에 송별하고 새해도 벌써 2달이 지났다고 하고, 중간의 소식은 전해 들었으나 도성에 들어간 뒤의 소식은 못 들었다고 하였다. 논의를 꺼낸 지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도 결론이 나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하고, 세도가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해도,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독려를 하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무리하게 대처하지는 말기를 당부하였다. 이번 봄 陵幸 때 임금께 하소연할 길이 있을 듯하니, 그 訟錄의 내용은 반드시 깊이 주의하여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상대의 去就는 현 疏儒의 進退와 같이 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선조인 葛庵 李玄逸(1627-1704) 선생의 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 때문에 楮谷의 인편을 재촉해 옷가지 등을 마련해 오라고 했는데, 公鎭 같은 諸君들이 소홀하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각 마을은 편안하다고 하고, 자신은 노쇠함이 날로 심해지는데, 갈암 선생의 신원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염려된다고 하였다. 현재 영남 사람 중에 힘을 써 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典洞의 대감은 실권이 있는지를 묻고, 들은 소식이 있거든 하나하나 알려달라고 하였다.
楮谷에서 심부름꾼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어 수령의 행차 편에 보내는데, 받아보았는지를 물었다. 함께 고생했던 여러 형들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하고, 景理 金相燮 , 國亨 洪應龜 같은 이들에게는 마땅히 편지를 보내 정을 표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한이 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5년 이수영(李秀榮) 서간(書簡)

雉嵩旅榻 奉狀
客冬送別新年 而月幾再朏矣 中間履歷
槩得於傳誦 而如入城以來 則未耳 坐者鬱
抑悶塞當何如 惟伊來久淹
將攝 勝似程役時若乎 須十分自愛 毋或斯
須放過 致有尤悔 千萬在家之望也 旣發
之擧 恰已數朔 而若未聞事之歸宿 尙在
不進不退之間 想有不得不爾之端 而遠外之見 不
能不爲之懣然也 傳者之言 固多吹毛之疵 而其曰
十番往役於大老行在 而大老持之 周旋候覸
於勢家風旨 而勢家喝之 以此低迴 遷延時月
遂至悠謬渙散 去留相半 此皆不炊之烟耶 雖
其實狀 有非言者之言 以若遲延顧瞻之面 無怪
乎來人之言也 區區謬見 每竊隱揣于心 度之以時
此事之發 誠不自量已 然爲今之計 斷不容中
途而前却 以取譏於一代也 其在同盟諸公 亦皆
濟濟名勝 豈或慮不及昏墊之科哉 直是岸上
者之過慮耳 第家寃未白者 又非他人之比 則隨波
之役 縱不能徑自退步 苟取涯異 然參以公私 亦豈無
雍容處變之道哉 今春陵幸 似有鳴暴
之路 如訟錄文字 固知留在頖主 當有事變
後 措語點化處 須與在彼意中人 爛商留備
臨機策應 毋或顚錯可也 如爲吾家 已發之儒論 又被目今
事魔之 而因陵幸 門生上言之議 亦隨而壞耳 悠
悠數年强 而曾不能以此事一警欬 言念及此 哽咽
無言 爲之奈何 君之去就 不可以見行疏儒之
進退同也 可遲可速 一視先事利鈍之候耳 其期
烏可執定耶 所以督令楮谷伻 致衣資資斧
而君之家事 須入念頭 未始不津津致此意
於公鎭諸君輩 其果不置之疏漏之域耶 各
邨槩安 而如秀也衰朽之狀 可謂日陷一
日 前頭能復幾何 惟未及見盆日之回
是懼耳 見在嶺人 誰爲可仗 時宰之遞入
能有可倚於吾家事者乎 典洞台當路亦信
否 果爾 則此事恢公 卽乃家素業 其殆庶乎 凡耗
可聞 望須一一示及如何 涉世審愼之節 君
固已脚跟有定矣 玆不能一一
裁書待楮谷伻至 聞已捱過矣 卽於主倅之行付之
可能無浮沈耶 同苦僉兄 不能逐一提及 第懸
念則耿耿 爲傳此意也 如景理國亨合有書
表情 而眵未果焉 恨恨
乙亥二月初八日 族叔 秀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