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67년 이기상(李驥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67.0000-20120630.E4784063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기상, 이원조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30.5 X 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7년 이기상(李驥相) 서간(書簡)
1867년 9월 10일, 이기상이 아버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부친의 안부를 묻고, 다른 사람들의 행차와 안부를 묻고 있다. 이어서 자신의 일정을 말하고 서울의 관직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죄의 혐의를 벗었고 而寬은 獻陵의 直長이 되었으며 이달 12일 궁에 돌아온 후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간다고 히였다. 끝으로 고기와 초를 池洞宅에 전했으며 형이 부탁한 부싯돌 4개도 보낸다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67년(고종4) 9월 10일, 이기상이 서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버지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7년(고종4) 9월 10일, 李驥相이 서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버지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친의 안부를 묻고, 山城으로 행차했다가 잘 돌아왔는지를 물었다. 從兄과 큰 조카는 길을 떠났는지 묻고, 萬兒가 日課를 폐하지 않도록 자주 불러서 가르침을 주시기를 청하였다. 자신은 8일에 도성에 들어가 而寬과 함께 거처하고 있으며, 陵行은 9일에 강가에 나가 水操를 익히고, 12일에 還宮하였다고 하였다.
吏判曺錫雨, 兵判金炳澍을 추천하고, 副使姜{氵+老}趙性敎로 대신하였으며, 金興洛, 永川李章翊 大人 등은 모두 實職으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암행어사가 아직 復命하지 않았으나 宰相 운운한 것은 모두 혐의를 벗었고, 朴周雲柒谷의 일로 취조를 받았고, 成參奉은 중도에 방환되었다고 하였다.
人馬는 柳表兄이 쓰는 바람에 부득이 빌려서 보낸다고 하고, 而寬獻陵直長이 되었으니, 걱정이 없으며, 還宮 後에 즉시 出番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러 곳의 人事는 오늘 하려고 하는데, 齋洞은 일체 입을 열지 않고, 朴龍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고기와 초를 池洞宅에 전하였는데, 부싯돌 4개는 형이 부탁한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은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이기상(李驥相) 서간(書簡)

父主前 上白是 謹封

離發有日 慕鬱靡日不切 伏未審
其間
氣體候 不瑕有損節 山城行次 果
已利返 各家諸節 面面安吉 從兄主
及長侄想已發程 萬兒不廢日課否
常常招來敎督伏望 才質不甚魯鈍
無失此時似好 家務專委渭兒 而遠外言
之何益 子 初八日入城 與而寬同處 不甚寥
寂 而餘憊尙多可悶 陵行 初九日出江頭 習
水操 十二日還宮 吏判曺錫雨 兵判金炳澍
副使姜노{氵+老}趙性敎 初仕金興洛永川
章翊
大人云云 皆爲借啣 今番備薦耳 歲繡
姑未復命 而宰相云云之說 皆已得免 朴周
亦以柒谷事事 就理 成參奉在平中路蒙
放耳 人馬以柳表兄之擧動公故 不得已
借送 玆曠日 其間 伏想致訝矣 而寬獻陵
直長
無慮 還宮後 卽爲出番云耳 諸
處人事 今日將欲爲之 齋洞一不開口 朴龍仁
最緊云耳 肉燭
傳于池洞宅 而火
石四介 兄主所托
耳 餘 在續便更
白 不備 伏惟
下鑒
丁卯九月初十日 子 驥相 上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