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고종4) 9월 10일, 이기상이 서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버지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7년(고종4) 9월 10일, 李驥相이 서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버지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친의 안부를 묻고, 山城으로 행차했다가 잘 돌아왔는지를 물었다. 從兄과 큰 조카는 길을 떠났는지 묻고, 萬兒가 日課를 폐하지 않도록 자주 불러서 가르침을 주시기를 청하였다. 자신은 8일에 도성에 들어가 而寬과 함께 거처하고 있으며, 陵行은 9일에 강가에 나가 水操를 익히고, 12일에 還宮하였다고 하였다.
吏判은 曺錫雨, 兵判은 金炳澍을 추천하고, 副使姜{氵+老}는 趙性敎로 대신하였으며, 金興洛, 永川李章翊 大人 등은 모두 實職으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암행어사가 아직 復命하지 않았으나 宰相 운운한 것은 모두 혐의를 벗었고, 朴周雲도 柒谷의 일로 취조를 받았고, 成參奉은 중도에 방환되었다고 하였다.
人馬는 柳表兄이 쓰는 바람에 부득이 빌려서 보낸다고 하고, 而寬은 獻陵直長이 되었으니, 걱정이 없으며, 還宮 後에 즉시 出番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러 곳의 人事는 오늘 하려고 하는데, 齋洞은 일체 입을 열지 않고, 朴龍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고기와 초를 池洞宅에 전하였는데, 부싯돌 4개는 형이 부탁한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