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6월 13일, 김양진이 자신의 숙부상에 조문 왔던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
내용 및 특징
1863년(哲宗 14) 6월 13일, 金養鎭이 자신의 숙부상에 찾아온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이다.
편지 첫머리의 ‘省式’은 ‘예식을 생략한다’는 말로 服中인 사람이 보낼 때나 服中에 있는 사람에게 보낼 때 편지 첫머리에 쓰는 표현이다. 김양진은 당시 숙부상을 당해 朞年服을 입고 있었다. 먼저 숙부 상을 당했을 때 특별히 찾아와 매우 고마웠다고 하며, 그 뒤로 마음이 여유가 없어 여러 벗들의 기억 속에 잊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특별히 먼저 찾아오게 만들었으니 너무도 부끄럽다고 하였다. 편지에 보이는 ‘懇恤備至’는 마음으로나 물질로나 모두 지극하게 마음 써주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인편이 없어 지금까지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으니 도리가 아니라고 민망해 하고 있다.
더운 여름날 조부모 모시고 지내는 여러 형제분들의 건강과 상주인 종숙부, 자식과 온 가족이 잘 지내고 있는지 그립다고 하였다. 자신은 갑자기 숙부 상을 당해 기력이 소진되었다고 하며, 나머지 식구들이 별 탈이 없는 것만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替事’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섬긴다는 말로, 숙부를 이른다. 小殮과 大斂을 마친 뒤에 산소를 써야하는데 매일 슬픔에 젖어 있어 마음 쓸 겨를도 없다가 근래 皐復을 마쳐 형편을 봐가며 산소를 쓸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禹兄이 역병에 걸려 아직 왕래하지 못하기 때문에 咸氏 地官을 부르러 김양진의 형이 갈 예정이라고 하였다. 내용으로 보아禹兄이라는 사람이 山地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역병에 걸려 다른 지관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어수선하여[擾攘] 이만 줄인다고 하였는데, ‘擾攘’이라는 표현을 통해 김양진이 숙부에게 상당히 의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양진(1829~1901)의 자는 正伯이고, 호는 愚軒으고, 本貫은 義城이다. 耳壽의 아들이고, 琴學泰의 외손이다. 벼슬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