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60년 최영록(崔永祿)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60.4784-20120630.E4784038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최영록, 이원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작성시기 1860
형태사항 크기: 25 X 49.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0년 최영록(崔永祿) 서간(書簡)
1860년 4월 1일, 최영록이 유림의 제반 문제를 논의코자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병세를 묻고 고산 모임의 소식을 자세히 들려 달라 청하며 자신이 맡은 講長의 일은 전에 쓴 돈을 보충해 놓고 그만둘 것이라 하였다. 이어서 당신께서 시문을 가르쳐 주신다면 거기에 응할 사람이 많을 것이니 부디 허락해 줄 것을 바란다고 하고 있다. 또한 후포의 문집을 교정하는 문제와 이달 20일 모임장소에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60년(철종11) 4월 1일, 노포의 복인 최영록이 유림의 제반 문제를 논의코자 한개의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0년(철종11) 4월 1일, 鷺浦의 服人 崔永祿(1793-1871)이 유림의 제반 문제를 논의코자 한개[大浦]의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공부의 방해가 될 정도라던 상대의 병세가 어떤지를 묻고 자신도 눈과 머리가 모두 흐릿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高山의 모임에 다녀온 소식을 자세히 들려 달라고 청하였고, 자신이 맡은 講長은 연전에 쓴 비용이 많아 보충해 놓은 다음 遞任되려고 하다 보니, 조금 늦춰지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고을의 物論이, 전 고을을 통틀어서 講에 응할 儒生이 많아야 5,6人 뿐이지만, 이제 居接하게 하면 各 門中에서 應할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 하니, 習俗이 좋지 않아서이긴 하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다만 그들의 재주가 편중되어 있어 時文에 익숙하지 않으니, 그들을 잘 인도하려면 상대와 같이 명망과 실제를 갖춘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부디 승낙하여 고을과 輿望을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後浦의 文集은 상대가 지어준 글을 환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저간의 곡절은 모르겠으나 전해오는 말을 듣자면 彼此 모두의 不幸이라고 할 만하다고 하면서, 일전에 그 門中에 편지를 보내어 대략 벗의 도리를 진술하고, 조만간 校正하겠다는 등의 말을 고해주었으나 답장의 내용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굽히지 않으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오래도록 상대방과 대화를 하지 못해 속이 황폐해지는 것 같으니, 이달 20일에 會所에 나아가 뵙고자 한다고 하였고, 현재 鰲巖書院에 있는데 소란하여 이만 줄인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會集하여 글을 짓는 것은 매우 시급하니, 즉시 書院의 하인들로 하여금 居接하겠다는 뜻을 속히 돌아가며 보여서 輿望에 부응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0년 최영록(崔永祿) 서간(書簡)

大浦 台座下 入納
鷺浦候狀 省式謹封

省式 迺者垂問 沒便稽謝 感久悚生 伏問此時
台候若何 前聞 以痞鬲之祟 有妨於書冊間事 爲之貢慮 則
深 而靜坐下氣 收其放心 亦爲一事 朱子所謂恨不早爲盲癈
者 正爲此事耳 未知如何如何 永祿 比來一症 頭眩目昏 神氣
不振 種種無醒醒時日 是未知工夫 未得透到上淸溪界與
氣質 合以爲祟耶 向來尊旆之自高山會上來 意謂
好話說可道 而爲警遠方之聽聞也 前書無有及之者
可歎 所謂講長 當初受任 出於不得已 而久於玆 非本意也 但
年前冗費甚多 故姑徐遞任 以補其闕 而一番講會 亦將依
例過去矣 卽聞鄕內物論 以爲通計全鄕應講儒生 多不過
五六人而已 玆令居接 則各門應接 不可勝數 與其獨樂 孰若
衆樂云云 此實習俗之因 然以吾所好 拂人所願 亦非公共好
事 況吾之所好 有何益於他人耶 當依從衆擧行可矣 但渠之
偏才 旣不習時文 豈可强其所不能 而都留伐齊之名哉 大抵
人之所能 苟不通才 則亦難堪做時人所望 而吾黨中通此兩
途 而負重望者 非台監 而孰居其右耶 玆敢遞送 幸須
容領 叩鄕所願 毋失輿望 千萬千萬 後浦文集事 事涉台
監 以至還收文字之境 這間曲折 雖未知如何 而傳來言說 可
謂彼此之不幸 日前抵書於其門中 略陳朋友之責 又爲早
晩校正等語告之 其回音之意 自恕太重 良可憂悶 久
不與台監相敍 不覺肚裏之生吝 無緣承款 今月念
日 當進會所一款耳 餘 適在鰲巖 院中擾擾 不宣 伏
惟下照
庚申四月一日 服人 崔永祿 拜拜
會集爲文甚急 卽令院隸 速速輪示其
居接之意 以慰輿望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