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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박기령(朴箕寧)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42.4728-20120630.E4784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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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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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기령, 이원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
작성시기 1842
형태사항 크기: 38 X 51.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2년 박기령(朴箕寧) 서간(書簡)
1842년 2월 4일, 친척인 박기령제주목사로 있는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이 험한 지역인 제주로 부임하게 된 것을 위로하며 자신은 녹문으로 독서하며 노년을 조용히 보내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다. 이어서 제주는 절경이니 그 곳를 그린 영주도(瀛洲圖)를 병풍이나 족자로 만들어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또한 가헌을 방문할 예정이나 어찌 될지 모르겠고 자신이 있는 곳의 각 집안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42년(헌종8) 2월 4일, 박기령이 제주도를 그린 병풍을 보내달라며 제주목사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42년(헌종8) 2월 4일, 鹿門에 사는 戚從 朴箕寧이 제주도를 그린 병풍을 보내달라며 濟州牧使로 있는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溟州[江陵]에 있을 때 편지를 받고도 미처 답장을 못하였는데 바다를 건너 제주로 부임하게 되셨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으면서, 땅도 넓고 백성들도 사나워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나 평소에 쌓은 것을 발휘한다면 얼마 안가 공부에 전념할 여가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위로 하였다.
자신이 赤城을 나와 鹿門으로 들어간 것은 농사지으며 부모를 봉양하고 독서하면서 노년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다시 만나 옛날처럼 토론하며 공부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자문하였다.
東國의 關東瀛洲[濟州]는 모두 산과 바다가 절경인데 그런 곳에서 수령을 하는 상대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내고, 그림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도록 섬 속에 그림 잘 그리는 자를 시켜 瀛洲圖를 그려서 병풍이나 족자로 만들어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여유가 생기면 同甫를 위하여 稼軒을 방문할 예정이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자신이 있는 곳의 각 집안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는데, 특히 노인을 모시고 있는 從은 곧 聖寅의 무리와 같은 형국이 될 듯하다고 하였다. 周鳴도 발길을 끊은 지 20여 년 동안 從王考 以下 및 傍親의 묘소의 제사를 담당하면서 한 번도 허투로 지낸 적이 없던 사람이 이 동생이라면서, 상대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어야 할 듯하여 언급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2년 박기령(朴箕寧) 서간(書簡)

瀛州伯 節下執事 入納
鹿門山人 拜候書 [着名]謹封

迬在溟州時一書 可感遠寄之意 而周觀
行迹 惟恐我知 因失便 未謝而渡海 旌節聲
光 尤歷落 可望而不可攀 極目瞻注 如鯁在喉
海國先春 此峕
令候動靖衛重 衙節穩侍否 地大氓獠 勞心鎭撫
想應擾惱神思 然以其所存所養 施於爲政 豈非
令學之一事耶 轅門盡靜 正是古人讀易之地 簿牒之隙
必爲向裏玩賾之工也 以是伏慰且溸 戚從 年與志頹 益覺
無狀 而旣出赤城 又入鹿門者 蓋出於躬耕養親 讀書終
老之計 而飮啜不足以繼其權 憂病又從以敗其意於其二
者 雖欲固守補綴 而恐終不得安身立命之地 柰何 以此每中
夜繞壁 回憶嚮時 ■燈講討之樂 則最是來書 所謂百原故事
雖欲更得 得乎 東國之關東瀛洲 並是山海瓌觀 而官跡
所至 必於其地 令公何修 而得此淸地也 如我者 兩腋可翅
不可往見 令之前在江陵 欲請八景圖畵屛一疊 已往矣 勿復言
島中如有善畵者 爲我寫出瀛洲圖 或爲屛 或爲簇以惠 則時時展
觀 凡山海之形 城邑之狀 可以臥遊 藥材中
如陳皮 不厭其多 討便留念如何 待他
■綬之後 爲同甫訪稼軒之行 而未知如何
耳 不備 惟伏祝
令候爲時保重
下在
壬寅二月四日 戚從 朴箕寧

此中各家 便同桑海 不可枚擧 而從之奉老情
勢 若非此弟 幾何爲聖寅輩一套耶 猶能向前
擔當 自從王考以下及傍親之墓忌辰 雖一勺一
魚 不廢而虛度者 此弟也 周鳴滅跡不來 二十餘年
其餘何足責耶 令公猶可知如此境界 故提及之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