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헌종8) 2월 4일, 박기령이 제주도를 그린 병풍을 보내달라며 제주목사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42년(헌종8) 2월 4일, 鹿門에 사는 戚從 朴箕寧이 제주도를 그린 병풍을 보내달라며 濟州牧使로 있는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溟州[江陵]에 있을 때 편지를 받고도 미처 답장을 못하였는데 바다를 건너 제주로 부임하게 되셨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으면서, 땅도 넓고 백성들도 사나워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나 평소에 쌓은 것을 발휘한다면 얼마 안가 공부에 전념할 여가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위로 하였다.
자신이 赤城을 나와 鹿門으로 들어간 것은 농사지으며 부모를 봉양하고 독서하면서 노년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다시 만나 옛날처럼 토론하며 공부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자문하였다.
東國의 關東과 瀛洲[濟州]는 모두 산과 바다가 절경인데 그런 곳에서 수령을 하는 상대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내고, 그림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도록 섬 속에 그림 잘 그리는 자를 시켜 瀛洲圖를 그려서 병풍이나 족자로 만들어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여유가 생기면 同甫를 위하여 稼軒을 방문할 예정이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자신이 있는 곳의 각 집안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는데, 특히 노인을 모시고 있는 英從은 곧 聖寅의 무리와 같은 형국이 될 듯하다고 하였다. 周鳴도 발길을 끊은 지 20여 년 동안 從王考 以下 및 傍親의 묘소의 제사를 담당하면서 한 번도 허투로 지낸 적이 없던 사람이 이 동생이라면서, 상대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어야 할 듯하여 언급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