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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이광정(李光正)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40.4200-20120630.E4784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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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광정, 이원조
작성지역 강원도
작성시기 1840
형태사항 크기: 37.5 X 51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0년 이광정(李光正) 서간(書簡)
1840년 12월 21일, 강원도관찰사이광정강릉부사이원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상을 당한 이후 자신의 슬픈 심사를 전하며 백성들은 안정을 찾아가는지와 때에 맞지 않는 풍년을 한탄하고 있다. 별도로 관호(官戶)에 관한 개혁과 세금, 환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탈옥한 김두송을 반드시 잡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끝으로 성주에 조문 편지와 물품 2종을 보내니 대신 전해주길 바라며 돈 500전은 준비해 놓았으니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40년(헌종6) 12월 21일, 강원도관찰사이광정이 官戶에 관한 개혁과 세금, 환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강릉부사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40년(헌종6) 12월 21일, 江原道觀察使李光正江陵府使로 있는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답장을 드리기도 전에 거듭 편지가 오니 부끄럽고 고맙다고 하면서, 병으로 고단하다고 한 상대의 말에 동병상련의 처지라고 공감을 표현하였다. 이번 겨울에는 건강이 안 좋으시니 바다 바람과 습기 때문인 듯하여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인편이 다녀간 후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어느덧 한해가 다 가니 또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은 특별히 말할 만한 상황이 없다고 하였다. 金剛山의 詩 빚은 산처럼 쌓여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매화가 피었다 지도록 반 푼의 흥미도 일지 않는다고 하면서, 대개 喪을 당한 이후로 심사가 이럴 수밖에 없으니 어쩌겠느냐고 하였다. 백성들은 차차 안정을 찾아가는지를 묻고 상대의 심려가 많겠다고 하면서, 이런 풍년에 도리어 때에 맞지 않은 불의의 재앙이 있음을 한탄하였다.
別祿이 있다. 官戶에 관한 일은 經筵에서 아뢴 것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거론하기 어렵다고 하고, 이처럼 개혁하는 일은 오직 조처를 잘 하느냐에 달렸다고 하면서, 백성들이 만약 굴복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지원할 터이니 형편에 따라 잘 인도하되, 요체는 民情을 따르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조치는 장차 2년에 한해서 할 것인지를 묻고, 기한은 逋欠한 것의 多少와 年限의 久近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停退한 還穀을 절반만 거두어들이는 일은 나도 올해에 또다시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廟堂이 이미 이와 같이 經筵에서 아뢰어 영을 내렸으니, 다시 啓請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西面은 이미 세금을 감면한 사례가 있는데, 또 還穀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金斗松의 일은 그렇게 엄한 명을 내렸는데도 감옥에서 탈출하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하면서, 外方에서 監營을 우습게 보는 현실을 개탄하고, 關門을 보내 반드시 잡아들이겠다고 하였다.
星州로 보내는 弔狀과 2종의 물품을 보내니, 전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500錢은 지금 私通해 놓았으니, 이것에 의해 擧行하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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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40년 이광정(李光正) 서간(書簡)

江陵政閣執事


書未復 卽又荐敎 慚感交至
第病憊二字 卽同憐之地也 今冬
日候 大抵不好 無乃是海瘴與風
爲之祟歟 殊用獻慮 便後
政候調節 更如何 居然歲色已畢
又不禁惄如之懷也 弟 眩苶拙慵
無可道者 金剛詩債 尙逋如山 梅
開將盡 苦無半分興味 蓋自喪威
之後 心事不能不如此 柰何柰何 海戶
漂頹 間已次第奠接 不至於流散
否 想有大家勞神 而以此康年
反有非時不意之灾
者 可謂造化
無全功也 極
爲之惻然關
心也 臨燭艱
草 自餘 不
備 謹謝狀

庚子臘月卄一日 服弟 光正
別錄
官戶事 因係筵奏未久之
事 到今更擧 似有碍於聽
聞事面 而此等事 惟在措處
之善不善如何 民苟不撓 自可
因勢 而利導之也 若事到可
處 弟亦當靜以鎭之 以求其成
而已 幸
諒此圖之 以順民情爲要道
如何如何 此擧將欲限兩年爲之耶
亦不可不參量於逋摠之多少 年限之
久近也 如何
停退還折半收捧事 愚亦不
意其今年復出 而廟堂旣如是筵
奏出令 則必無鎖刻之理 旣知其
如此 則啓請何益 況旣以西面之稅
得蒙曠絶之
典 又以西面之還 不顧嚴畏之體
則道理姑舍 是物議當以爲何如
耶 戊丁恐非可論也
諒之諒之 只可以姑從寬緩之政 俾
不至於騷擾也
金斗松事 台以鎭營 其間又令數
次嚴棍 則何至於勇銳逃脫乎 其
曰囚曰棍之初無其實 推此可知 外官
之不有營門 蓋多如此 便成時體
如此 而何事可做乎 方欲發關譏
捕 而譏捕之邑 又當如陟將之爲
也 寧欲屛息而已
此去星州弔狀及二種物 幸於鄕
禠 付送如何 五百錢 則方有私通 使
之依此擧行好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