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헌종6) 12월 21일, 강원도관찰사이광정이 官戶에 관한 개혁과 세금, 환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강릉부사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40년(헌종6) 12월 21일, 江原道觀察使인 李光正이 江陵府使로 있는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답장을 드리기도 전에 거듭 편지가 오니 부끄럽고 고맙다고 하면서, 병으로 고단하다고 한 상대의 말에 동병상련의 처지라고 공감을 표현하였다. 이번 겨울에는 건강이 안 좋으시니 바다 바람과 습기 때문인 듯하여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 인편이 다녀간 후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어느덧 한해가 다 가니 또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은 특별히 말할 만한 상황이 없다고 하였다. 金剛山의 詩 빚은 산처럼 쌓여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매화가 피었다 지도록 반 푼의 흥미도 일지 않는다고 하면서, 대개 喪을 당한 이후로 심사가 이럴 수밖에 없으니 어쩌겠느냐고 하였다. 백성들은 차차 안정을 찾아가는지를 묻고 상대의 심려가 많겠다고 하면서, 이런 풍년에 도리어 때에 맞지 않은 불의의 재앙이 있음을 한탄하였다.
別祿이 있다. 官戶에 관한 일은 經筵에서 아뢴 것이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거론하기 어렵다고 하고, 이처럼 개혁하는 일은 오직 조처를 잘 하느냐에 달렸다고 하면서, 백성들이 만약 굴복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지원할 터이니 형편에 따라 잘 인도하되, 요체는 民情을 따르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조치는 장차 2년에 한해서 할 것인지를 묻고, 기한은 逋欠한 것의 多少와 年限의 久近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停退한 還穀을 절반만 거두어들이는 일은 나도 올해에 또다시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廟堂이 이미 이와 같이 經筵에서 아뢰어 영을 내렸으니, 다시 啓請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西面은 이미 세금을 감면한 사례가 있는데, 또 還穀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金斗松의 일은 그렇게 엄한 명을 내렸는데도 감옥에서 탈출하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하면서, 外方에서 監營을 우습게 보는 현실을 개탄하고, 關門을 보내 반드시 잡아들이겠다고 하였다.
星州로 보내는 弔狀과 2종의 물품을 보내니, 전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500錢은 지금 私通해 놓았으니, 이것에 의해 擧行하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