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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정덕화(鄭德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40.1100-20120630.E4784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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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덕화, 이원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40
형태사항 크기: 32.5 X 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0년 정덕화(鄭德和) 서간(書簡)
1840년 5월 27일, 동부승지정덕화강릉부사이원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의 편지를 받은 것에 위안을 느끼며 자신은 근심 속에서 지내고 공무로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또한 상대방이 봉급을 덜어서 눈의 종기를 저렴한 방법으로 치료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빈 종이로 보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어 개탄스럽고 당신께서 쓸 만한 사람을 구하셔야 된다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40년(헌종6) 5월 27일, 동부승지정덕화가 답장하기 위해 강릉부사로 있는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40년(헌종6) 5월 27일, 同副承旨鄭德和江陵府使로 있는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綠陰 속에서 편지를 받고 황홀한 기분이었으며,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심 속에서 지내며, 지금은 名利의 場에 빠져서 草野를 잊어버리긴 했으나 용기를 내서 빠져나가보려고 한다고 하였다. 부모님은 다행히 잘 지내시지만, 자신은 바쁜 공무로 온 몸이 녹초가 되었다고 한탄하였다. 봉급을 덜어서 눈의 종기를 대략 치료한 것은 저렴한 방법으로 한 것이기에 축하한다고 하였다.
簡空(빈종이로 보내는 것)의 설은 시골스런 투습이니 개탄스럽다고 하고, 이른바 貴族에 근래에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은 옳다고 하면서 쓸 만한 사람이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0년 정덕화(鄭德和) 서간(書簡)

滄海梅軒 執事 回納
同副令謝書 謹封

綠陰細艸 遠懷良勞
華牘際至 忙手披緘 正
似褧遠樓夕陽時半醺 一
詠底氣味 且細諗
篆體 此時身毖 尤荷且
慰 第墮在愁窟之
敎 良亦一呵 滔滔名心 發
在眉頭 已與麻衣 晝得做
不得三字矣 柰何奈何 然急
流勇退 猶可爲神仙 須
諒處之 弟 省晏稍慰 而近
以供劇之役 百骸交楚 衰
矣 可憐 除却官俸 略醫
眼瘡 果是廉價手叚 可賀可賀 然
慈浪滔天 末流難障於其時
然良平無以接
應 亦將柰何 可呵可呵
簡空之
說 第是
鄕套也
可慨 然而
冥箇悵
缺 則無
論早晏
烙置之件
必爲輸
惠 則雖
百空簡 可
以贖之 更
諒必圖也
可呵可呵 所謂
貴族 近來無
人 何可信也 都在
處分 須目審
其合用 而如不合
用 則更爲求得
爲先烙置好矣
餘 在夾片 都留
不備謝
庚子五月卄七日 弟 德和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