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11월 25일, 김종태가 감영에 있는 상대방에게 인동의 선영에 대해 도움을 주기를 바라며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27년(純祖 27) 11월 25일, 金宗泰가 監營에 있는 상대방에게 仁同의 선영에 대해 도움을 주기를 바라며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처럼 날씨가 따뜻하여 눈이 변해 비가 내리니, 이러한 때에 그리움은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건강과 아들의 학문에 발전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데, 상대방에게 ‘令’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어 상대방의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令’은 당상관 이상 종2품 參判에게 쓰는 표현이다. 자신은 객지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며 보내는데, 부모와 자식이 종종 병을 앓아 걱정이라고 하였다.
편지에서 본론에 들어갈 때 ‘就控’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 편지의 주 내용은 바로 仁同에 있는 자신의 선영에 대한 부탁을 하는 것이다. 지난봄 문후 드리러 갔을 때 부탁하여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庭科 보러 가는 사람 편에 편지를 써서 부쳤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혹 편지가 중간에 분실되었거나 상대방이 기억 못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자신은 한미한 집안사람이라 선영에서 백 리 떨어진 곳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살고 있으니, 감영에서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조그만 선영도 보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외람된 줄 알면서도 이렇게 간청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상대방이 한 마디 말을 해 주어 자신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해 달라고 하면서 제발 빨리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말미에는 台監의 안부와 함께 高城 관아에 있는 누군가의 소식도 묻고, 延陵의 小科 합격과 美洞 大科 급제에 대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릉은 바로 延安李氏를 말하고, 미동은 五美洞 豊山金氏를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계절에 따라 건강하기를 바라는 말로 편지를 맺고 있다.
金宗泰(1800~1883)의 자는 季鎭이고, 호는 翠軒이다. 본관은 豊山으로, 相定의 아들이다. 1837년에 生員試에 합격하고, 1850년에 文科 兵科에 급제하여 弘文館副修撰, 承政院都承旨, 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翠軒遺稿』가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