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8월 3일, 김상직이 상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또 시집간 딸의 죽음에 대한 슬픔 등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하고자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826년 8월 3일, 佳亭 金相稷이 상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또 시집간 딸의 죽음에 대한 슬픔 등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하고자 쓴 편지이다.
처음, 지난번 상대를 만난 이후 계속 뵙지 못해 유감이라고 하며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상대와 상대의 자식들의 안부를 물었다. 다음으로,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하며, 시집간 딸아이가 어린 나이에 죽게 된 일을 이야기하고 운수가 박한 자신을 한탄했다. 마지막으로, 상대를 찾아가고 싶었으나 여태껏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며, 吳丈 편으로 안부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金相稷(1779~1851)은 자는 仁村, 호는 佳亭, 본관은 一善이다. 부친은 金敬喆이다. 1819년 식년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咸平縣監 ‧ 兵曹參議를 역임했다. 피봉에 적힌 ‘佳谷 金生’은 바로 김상직을 의미한다. 가곡은 일선김씨의 세거지인 高靈개실마을의 옛 지명이다.
이 편지의 피봉 형태는 따로 피봉이 존재하는 單封의 형식이다. 피봉에는 처음 ‘河上[河回]의 영감께 이 편지를 보낸다’는 의미로 ‘河上令座下執事’라고 수취인 정보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좌측에는 ‘佳谷에 사는 金生이 안부편지를 올린다’는 의미로 ‘佳谷金生上候狀’라고 발급인 정보를 기입하고는 수취인 정보 보다 몇 칸 아래로 내려 적고 있다. 이렇게 내려 적는 이유는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문서는 하회의 和敬堂 北村댁 소유 문서이다. 따라서 수취인은 하회류씨 중 화경당 북촌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듯하다. 화경당의 건립주인 柳道性(1823~1906)의 가계를 추적하면 그의 부친은 柳希睦(1786~1804)이고 조부는 柳台佐(1763~1837)이다. 이 편지의 본문에서 발급인은 상대에 대해 자신을 ‘侍生’ 또는 ‘生’으로 표현하고 있고, 또한 상대를 ‘令’으로 기재했다. 따라서 수취인은 발급인보다 비교적 높은 연배의 관직생활을 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상직의 생년과 류도성 3代의 생년을 비교해 보면 수취인은 류이좌일 가능성이 높으나 이 편지가 가진 정보만으로는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이 편지는 回文 형식으로 되어있다. 처음 우측에서 3째 줄 ‘頃年陪頌殆洽宿願’에서 시작하여 좌측 방향으로 내용이 진행되며 좌측 끝에서 다시 우측 1째 줄 ‘下察’ 부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 2째 줄에 연월일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고문서 등 옛 글에서는 상대 또는 윗사람을 높이기 위한 표현으로 擡頭 또는 隔字를 사용한다. 이 편지의 경우는 대두를 3번, 격자를 2번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