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26년 홍영관(洪永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26.1100-20120630.E4784052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홍영관, 이원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26
형태사항 크기: 38 X 49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6년 홍영관(洪永觀) 서간(書簡)
1826년 9월 6일, 교리홍영관이 산송을 청탁하기 위해 결성현감이원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전씨와 이씨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상세히 살펴 이씨 집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별지(別紙)에 산송분쟁의 상세한 전개 과정을 서술하며 세력이 약한 이씨네가 산을 뺏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다시 한 번 부탁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26년(순조26) 9월 6일, 교리홍영관이 문안과 산송과 관련된 청탁차 결성현감으로 있는 응와 이원조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26년(순조26) 9월 6일, 校理洪永觀이 문안과 山訟과 관련된 청탁차 結城縣監으로 있는 凝窩 李源祚(1792-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낸 편지들은 잘 받았는지를 묻고, 가을에 들어서의 안부를 물었다. 같이 보낸 小紙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田씨와 李씨 측의 强弱과 曲直을 말하고, 다시 상세히 살펴서 무고한 李家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別紙가 있다. 銀河面月岩山 아래에는 李氏네가 매입한 산소 터가 있고, 그 남쪽 富昌山 일대에는 田家의 선영이 있는데, 산 이름도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지난겨울부터 세력이 있는 田家네 무리가 뚜렷한 문권 기록도 없이 李氏의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면서 해당 지역 사람들의 땔감 취득도 금하는 등 문제가 많으므로, 즉시 조사하여 세력이 약한 李氏네가 산을 뺏기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6년 홍영관(洪永觀) 서간(書簡)

結城政堂執事 入納
觀峴 洪校理 候狀 謹封

續候 次第
入覽否 卽問淸秋
政候動靖 一向衛勝 區區
仰慰且溯 弟 一味奔汨
秖自悶憐 就胎呈小紙
覽可悉矣 蔽一言曰 前
官旣決之訟 未知有何別
般委折 而有此飜斷乎
田强李弱 此直彼曲 則
恐不必扶抑於其間 且焉
有四十里延袤立案之地
設有一張故紙之從某
至某 曰以立案者 當此
地狹人衆之時 豈可任其
廣占 且況初無文
案 而自稱疆界
冒奪居民之基
址者乎 以
弟所聞
强弱曲直
如此 抑或
未及
俯燭而然耶
更加詳察
毋使無告
之李家呼
寃之地如何
非出私囑
實爲公論
諒之也 餘
不備書禮
丙戌九月六日 弟 永觀
小紙
治下銀河面李喪人梓遠 居在月岩山下 環月岩以西 卽民田舊陳 昭載
量案者 而李家買此於屢易主之餘 自有文券 來歷昭然 積年禁養者也
月岩山下官大路越邊以南 富昌山一局 卽田家世葬之地 而自其先世 爲其守
護墓地 以富昌山一局 付於宜松山案 以爲禁養者 亦已屢百年矣 山名旣異 東西逈
殊 而一條官道 定爲界限 自田先世 未嘗有越此道相侵矣 去年冬 田家輩誣
出監色尺量月岩全局曰 此乃吾家立案之地也 今將打量索還云云 故李家
請見其立案文迹 則初無東西犯標之從某至某者 只以廣五里長十里周圍
四十里之地爲限 無論某邱某山 必滿此四十里之數 而盡取之 今若不拘形址 不用
犯標 而只持一箇山尺 從其所欲而量之 以充其四十里之數 則結城一縣之地 餘者
無幾矣 假使其立案犯標 符合於月岩山月岩全局 卽是舊陳處 而昭載量
案 的是民田 則勒奪民田 冒占立案者 係是國典之所禁 況初無立案
而欲白地圖奪於六里靑山者乎 前官旣知其然 故題曰 欲奪他人近百年禁
養者 誠是理外 又況云云立案文券 今無見存之可憑者 田哥自歸落科
云爾 則田哥輩不敢售其計矣 乃於向者 多般誣訴 竟得飜案 則遂乃攘臂
大談曰 四十里境界 吾將盡索 而先自李家禁養處 而始一草一木 誰敢犯
手乎 自玆以後 李家奴子 若或刈一柴於家後 則田哥輩 必奪其鉄鎌 碎
其擔車 敺之打之 無所不至 當此寒候 不得取一束柴於積年禁養之地 將
至凍死之境 非止李家然也 四十里內 幾多民戶 擧將爲凍尸而後止矣 此非細
故也 且李梓遠適出於田家起訟之時 不得對卞 幸待其呈訴 更
加査覈 卽爲飜案 毋使孤弱之李 空失其山之地 切望切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