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년 1월 2일, 이병진 외 1인이 집안의 안부를 전하고 순아의 혼사날을 정하여 알려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822년 1월 2일, 李秉進 외 1인이 집안의 안부를 전하고 順兒의 혼사날을 정하여 알려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쓴 편지이다.
처음 편지의 예식을 생략하고 이야기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대의 안부를 묻고는 그립다고 했다. 자신들은 새해가 되어 부모님의 연세가 한 살 더한 것에 대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다고 했다. 다행이 자신들의 맏형이 부모님을 모시고 있기에 모두 탈 없이 지낸다며 안부를 전했다. 다음으로, 상대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싶으나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처지에 바빠서 갈 수 없는 처지를 말하며 상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했다. 추록으로 순아의 혼사가 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에 상대에게 그 날이 언제인지 물어보았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李秉進(1770~1830)은 자는 退可, 본관은 韓山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발급인인 李秉遠(1774∼1840)은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조부는 大山 李象靖이고, 부친은 艮巖 李埦이다. 그의 형은 俛齋 李秉運(1766∼1841)으로 이 글 본문의 ‘家伯’이 바로 이병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1801년 음직으로 穆陵參奉을 제수 받아 이후 義禁府都事 ‧ 淸河縣監 ‧ 比安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이병운은 1797년에 음직으로 惠陵參奉에 제수된 후, 咸昌縣監 ‧ 淸安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이 편지는 현재 배접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 또 따로 떨어진 피봉이 파악되지 않아 피봉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정확한 수취인을 알 수 없다. 본문의 상황으로 수취인에 대해 유추해 보자면 일단 그는 ‘服中’에 있는 상황이고, 따라서 발급인이 편지 투식으로 문두에 ‘省式’을 적은 것이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상이나 형태상 이 편지는 慰狀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자신들을 ‘侍生’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수취인이 발급인보다 연배가 비교적 높은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 편지는 回文 형식을 이루고 있다. 처음 우측에서 4째 줄 굵은 글씨로 쓰인 ‘省式 忽此新年’에서부터 좌측 방향으로 글이 진행된다. 그리고 좌측 맨 끝에서 다시 우측 1째 줄인 ‘服下察’ 부분으로 이어져 내용이 끝난다. 그리고 우측에서 2째 줄에 연월일을 기록하고 그 줄과 다음 3째 줄에 걸쳐 두 사람이 연명으로 성명을 기입했다. 그리고 좌측 상단에 추록을 기입했다.
고문서 등 옛 글에서는 상대 또는 윗사람을 높이기 위한 표현으로 擡頭 또는 隔字를 사용한다. 이 편지의 경우는 4번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하였고, 이 중 2번 極行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1번의 격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하였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