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4월 22일, 김노범이 금릉에서 정사를 보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해 답장을 쓴 것으로, 자신의 근황과 지난번 부탁한 살구나무 널빤지에 관해 형편상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21년(순조 21) 4월 22일, 金魯範이 金陵에서 정사를 보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해 답장을 쓴 것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듣고 위로가 되었다는 마음과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지난번 부탁한 살구나무 널빤지에 관해 형편상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우선 피봉을 보면 ‘金陵政軒執事回納’, ‘熊川吏謝狀’라고 하여 ‘金陵에서 정사를 보시는 분께 웅천현감이 답장편지를 보냅니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금릉은 지금의 김천을 말하고 웅천은 진해의 옛 지명이다. 웅천현감은 이 편지의 발급자 김노범인데, 금릉에서 정사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다. 편지를 보낸 김노범(1759-1827)은 본관은 金海, 자는 景默, 호는 忍齋이다. 부친은 錫祚이다. 1795년 문과에 급제하여 禮曹佐郞·熊川縣監·承文院正字·忠淸道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웅천현감 때는 김해 진영의 兵馬節制都尉를 겸하기도 하였다.
편지 서두에서 지난번 지나가는 길에 잠시 만난 것은 지금까지도 간절히 슬프고 서운하였다고 전했다. 그런 뒤에 곧 인편이 와서 당신의 편지를 받으니 그간에 다하지 못한 회포를 충분히 풀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근래에 정사를 보시는 당신의 건강상의 안부와 일상생활이 늘 잘 지내시고 여러 벗들이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러러 위로되어 자신의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하였다. 그 뒤 상중에 있는 자신의 안부를 전했는데 여러 날 동안 공무를 수행한 나머지 고달픈 것이 날마다 심하여 오랜 시간동안 신음만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편지를 보낸 주된 이유를 말하는데, 상대방이 부탁한 살구나무 널빤지는 담당하는 종에게 물어보았는데 모두 통나무 상태이나 큰 톱을 쓰지 못한다고 하니 갑작스럽게 쪼개어 보내는 것은 일의 형편상 뜻대로 되기 어려울 듯하다고 전했다. 목수가 올 것을 기다려 먹줄을 쓴 연후에 쓸 만한 물건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우선 기다리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였다. 그런 뒤에 통영의 행차는 자신도 26일 사이로 갈 계획인데 당신도 그럴 것 같으니 그날에 서로 동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