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11월 14일, 김노범이 향색을 엄책하지 않기를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20(순조 20)년 11월 14일, 金魯範이 방금 떠난 金陵邑 소속 鄕色을 엄책하지 말기를 당부하기 위해 金陵首領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 내용에서 김노범은 일전에 주고받은 편지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겨울 추위 가운데 상대방의 안부와 그 부인의 병세가 어떠한지를 물었다. 그리고 정무를 보는 상대방이 糴政[환곡]으로 인해 마음이 괴롭지는 않은지도 덧붙여 물었다. 김노범 자신은 매월 초하루에 지방특산물을 임금에게 바치는 朔膳을 겨우 마치고 쉬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적정으로 근심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방이 수령으로 있는 금릉의 향청에서 일하는 아전이 지금 막 출발했는데, 봉진한 후에 거두어들이는 인정잡비를 관할할 여러 읍에 분배하는 일은 향청의 아전이 다 담당했다고 하면서 여러 날 함께 고생한 아전을 엄책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 김노범(1759-1827)은 자가 景默, 호는 忍齋, 본관은 金海, 부는 金錫祚, 조부는 金尙白이다. 1795년 식년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禮曹佐郞·熊川縣監·承文院正字·忠淸道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 편지는 김노범이 進甲의 나이로 웅천수령을 지낼 당시 금릉수령에게 보낸 답장편지인데, 매달 특산품을 진상하는 삭선과 환곡의 일종인 적정 등의 공무로 수고로웠던 수령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웅천은 오늘날 경남 진해 지역, 금릉은 경북김천의 옛 지명이다. 김노범이 편지 중에서 자신을 服弟라고 칭한 것으로 볼 때 당시에 그는 상중에 있었으며, 수급인과 서로 비슷한 연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편지 피봉에서 수급인을 金陵政軒이라고 칭하였으므로 수급인이 금릉의 수령을 지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