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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이병운(李秉運)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818.4717-20120630.000325700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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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병운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18
형태사항 크기: 21 X 3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대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8년 이병운(李秉運) 서간(書簡)
1818년 8월 17일에 이병운이 사빈서원의 통문과 관련된 일을 논의하기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막내아우가 휴가를 와서 위로되고 둘째아우가 아버지의 명으로 행차를 가서 슬프다고 전하였다. 사빈서원에서 통문을 내는 것은 모두 동의했으며, 저들이 만약 호응한다면 소수(疏首)는 저절로 도태될 것이라고 하였다. 적발 건과 관련한 말은 어려움이 있을듯하여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고, 통모록은 둘째아우가 가지고 갔는데 인편이 돌아올 때 드리겠다고 하였다. 끝으로, 마평으로 가는 것은 재계하는 일과 겹쳐서 가지 못한다는 추신을 덧붙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18년 8월 17일, 이병운이 사빈서원의 통문 등과 관련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18년(순조 18) 8월 17일에 下生 李秉運(1766-1841)이 泗濱書院의 通文 등과 관련한 사안을 논의차 보낸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의 季君이 휴가를 얻어 돌아오니 위로가 된다는 것과, 仲君이 결국 아버지의 명으로 늘그막에 마음에 없는 행차를 하여 송별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전하였다. 泗濱書院에서 통문을 내는 것은 모두 동의했으며, 大平(坪)의 姊兄도 결국에는 동의했다는 것과 상대와 芷江의 편지에서도 탄복을 했으니, 저들이 만약 메아리처럼 호응한다면 이른바 疏首는 저절로 도태될 것이라고 하였다. 摘發 건과 관련해서는 前後로 말해 준 것은 자신의 생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듯하여 송구하지만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痛慕錄은 둘째 동생이 가지고 갔는데, 과거 보러 간 인편이 돌아올 때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였다. 상대가 小紙로 부탁한 것은 모두 陰毁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추신으로, 馬坪으로 가는 것은 재계하는 일과 상치되어 가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8년 이병운(李秉運) 서간(書簡)

復敎良慰 數夜回 凉意陡生
靜中節宣 更益蘇謐否 同堂僉候更
如何 下生 親候僅免大諐 且得季君由歸 頗
慰分張之苦 但仲君畢竟爲親命一動 白首作非
心之行 送別以來 非但爲道路出入之慮而已 柰何
泗院發文 僉意同然 只大平(坪)姊兄 初則不然 終
又沕合 且亦如此方便 今承盛敎如此 芷江
亦云誠服其直截無回互態 使彼若響合 則所謂
疏首 不期汰而自汰 至於摘發一款 與其借人不成
徒使彼籍口自明 無寧自執其端 而可以沛然 而吾
所欲爲耶 前後所敎 以愚料之 終是推不出去下
梢 必將有許多窒礙 所以不能言下領服 然必是
鄙見錯料 不勝悚然耳 海天之喩 恐令人愧窘 然都
恐執事秋敎之意太勝 此亦恐是時然耶 極呵極呵 江亭
事 ▣…▣
▣…▣ 軒是
主斤改之云 何敢當何敢當 本紙姑留
當俟後便耳 痛慕錄 家仲
粧置而去 當於科便
回時齎上耳 刀子粘
於執事 豈或靳
惜 而但製樣 不合於
山人雜佩 早晩如得
樸槖如杻扇者 乃可
奉贈耶 小紙所示 近
日此等說話盈耳
者 皆是陰毁之意
使其堅坐 則又安知
做出何等話頭耶
餘 紙窄 不備狀禮
戊寅八月十七 下生 李秉運 拜手

俄見馬坪啓期 適
與喪餘坐齋相値 又
失因納一拜矣
御者旣出山 如得迤枉
於前期 則感幸當如何
而此則不敢望耳 家
季當於過祀後 以使
家巡站 卽爲還官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