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8월 21일, 금학수가 거상중인 상대를 위로하고, 혼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07년(순조 7) 8월 21일에 族孫 琴學洙가 居喪중인 상대를 위로하고, 婚事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장마와 가뭄 속에서 居喪 중인 상대의 안부가 어떤지를 묻고, 族孫인 자신은 어버이께서 봄에 원인모를 병으로 고생하시어 애가 탄다고 하였다. 仁浦와 高通(宣城)의 각 집은 편안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日前에 자신의 아버지가 文村으로 행차하여 상대의 季氏를 만났을 때, 상대의 祖侍(祖父)에게서 상대 따님의 중매를 서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德裕 兄의 집안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또한 자못 의향이 있었다고 하면서, 상대의 의견이 어떤지를 물었다.
대개 門閥이나 家勢는 이곳 아무개, 아무개와 비교할 때 가히 그보다 나은 곳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신랑감은 剡村의 叔侍(叔父)가 일찍이 목도한 바로는 약간 미흡한 듯하나, 뭐라고 말해주기가 어렵다고 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라고 부탁하였다.
마지막으로 그 집도 또한 婚處를 구하는 곳이 많고, 지금이 또 혼인철인만큼 그믐 전에 속히 답변을 줄 것을 청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