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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이만흡(李萬熻)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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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흡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크기: 27 X 3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가송 영천이씨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6년 이만흡(李萬熻) 서간(書簡)
1806년 7월 22일, 이만흡이 부모님 묘소를 이장하는 일로 골몰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과 그 집안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병으로 근심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기 아우집의 장례는 늦여름에야 끝마쳤고 둘째 조카의 묵은 병으로 그 아비가 고생하고 있으며 자신은 예의에 어긋나게도 어버이의 묘소를 자주 이장하여 괴롭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전국에 가뭄이 심한데 영해울령 지역은 가물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니 위로가 된다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06년 7월 22일, 이만흡이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묘소를 이장하는 일로 수고로운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06(순조 6)년 7월 22일, 苟完齋 李萬熻이 더위 중의 상대방 안부를 묻고 부모님 묘소를 이장하는 일로 수고로운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만흡은 요즘처럼 소식이 없었던 적이 없었기에 아득하게 그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해서 상대방을 비롯한 그 부모님과 집안사람들의 안부를 차례로 물었다. 자신은 늘 앓던 병이 올해 더 심해졌고, 계절이 지나도 식구들이 앓던 극심한 병이 낫지 않아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또한 사제 집의 장례는 묏자리와 날짜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서 4월에 시작하여 늦여름에서야 끝냈으며, 둘째 조카의 묵은 병은 아직도 뿌리 뽑지 못하여 그 아비가 애간장을 태운다고 하면서, 집안의 광경이 갈수록 황량해지는 것이 괴롭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후사로 들어간 곳의 어버이 묘소를 이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마음에 용납할 수 없어서 여러 번 옮겨 모시기는 했지만 예의에 있어서 어긋나는 일인지라 마음을 썩히고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전례 없는 가뭄으로 백성들의 탄식이 극심한데, 상대방이 있는 영해울령 지역은 가물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편지의 발급인 이만흡(1740-1814)은 자가 熙老, 호는 苟完齋, 본관은 永川, 부는 李廷秀, 생부는 李廷蕃이다. 경전과 사기를 비롯하여 의약·복서 등에도 능하였고, 저서로는 [苟完齋集] 1책이 전하고 있다. 이만흡은 17살 되던 해에 생부가 돌아가시자 어린 나이로 동생들과 상례를 집행하였는데, 이 편지에서도 후사로 들어간 어버이의 묘를 이장하는 일에 온힘을 쏟고 고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에 묘를 옮겨서 다시 장사지내는 緬禮를 행할 때 풍수와 택일 등의 문제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이장하기도 하는 장례의 풍속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편지의 피봉은 따로 피봉이 없는 單封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는데, 내지에 사연을 쓰고 접은 곳이 바로 피봉이 된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서진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6년 이만흡(李萬熻) 서간(書簡)

濶焉音耗 未有踈於此時 悠悠
懷想 何日可弛 旱熱纔退 秋氣
已生 不審此際
堂上鼎席 益膺康旺之慶
侍餘履用增休 閤眷大少
次第保穩否 區區不任遡昻
弟 例患衰浸 今年倍劇 往往
不能自振 兼以率下劇憂 閱
序猖獗 面面多惱撓之端
憫歎奈何 舍弟家葬禮 爲山地
及時之所拘 始於四月 畢於季夏
費經無限艱險 次姪宿病
尙未祛根 時時爲渠父腸膈
之憂 家內光景 去益荒凉 實爲苦
事 奈何 方營所後親墓緬事 雖緣
不容 但已累次移奉 情禮莫重 只爲
夙宵腐心之處耳 長夏旱魃之灾
於古所罕
生民無祿之歎
極矣 仄聞
以西 適免此
患云 可想貴邊
諸路 可得登
稔之福 爲之
慰賀無已 適
有便 掛漏潦
艸 不宣式
情亮 謹上狀
丙寅七月卄二日 婦弟 李萬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