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10월 15일, 이우가 새 사돈을 맺게 된 상대에게 기쁜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집으로 돌아간 사위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98년 10월 15일, 俛菴 李㙖가 새 사돈을 맺게 된 상대에게 기쁜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집으로 돌아간 사위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평소부터 돈독한 사이었는데 더군다나 사돈의 인연까지 맺게 되어 더욱 의분이 두터워 졌음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는 상대 집안의 안부를 묻고는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했다. 이어서 혼례는 날이 길하여 잘 치렀고 또 신랑도 현명하고 수려하여 바라던 소망에 맞으니 위로되고 기쁘다고 했다. 그래서 그로 인해 한미한 자신의 집안을 매우 빛나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의 아우가 일찍 죽은 상황에 대해서 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하며 자신의 마음도 이러한데 상대는 더욱 그럴 것이라며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사위가 입술에 종기가 난 상태로 바람을 맞아가며 길을 떠난 상황을 걱정하며 그가 상대의 집에 도착하면 잘 조섭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상대가 가까운 시일 안으로 자신을 방문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음을 말하고는 오기만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李㙖(1739~1810)는 자가 稚春, 호는 俛菴, 본관은 韓山이며, 小山 李光靖의 아들이자 大山 李象靖의 조카이다. 1792년 思悼世子의 伸寃을 청하는 만인소의 疏首로 추대되었고, 懿陵參奉을 지냈다. 1805년 古今島로 유배가기도 했다. [俛庵集]이 전한다. 그가 이 편지를 발급한 이유는 상대의 집안과 막 새 사돈 관계를 맺게 된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을 표현함과 동시에 혼인을 치르고 난 후 사위가 본가로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고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편지는 현재 피봉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수취인은 확인할 수 없다. 단지 본문의 내용으로 유추해 보자면, 처음 상대에게 ‘평소부터의 교계가 돈독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상대의 죽은 막내아우에 대해 언급한 내용 등으로 미루어 보면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상대 집안과의 혼사를 이야기 하면서 ‘사위[壻君]’를 언급한 것은 발급인 본인의 딸과 상대의 아들이 결혼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본명인 ‘㙖’를 썼고, 말미의 성명 표기에는 ‘弟’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수취인은 발급인과 평소에도 교유관계가 있다가 새 사돈을 맺은 자이며 연배가 비슷한 인물 정도로 추정할 수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 편지는 간찰첩에 배접되어 있는 상황으로 배접할 당시 재단의 문제로 상단 좌측 부분에 일부 글자가 약간 잘려 나가 있고, 첩이 접히는 부분의 상단에도 약간의 결락이 있다. 그러나 글자를 판독하기에는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편지는 回文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우측에서 셋째 줄 ‘平日交契’에서부터 내용이 시작하여 좌측 상단으로 내용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맨 우측 ‘情照謹候狀上’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측에서 둘째 줄에 연월일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고문서 등 옛 글에서는 상대 또는 윗사람을 높이기 위한 표현으로 擡頭 또는 隔字를 사용한다. 이 편지의 경우는 대두를 5번을 사용하였고, 모두 極行으로 올려 존경의 표현을 하였다. 격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