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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789.4717-20120630.000325700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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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완, 류성휴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89
형태사항 크기: 29.5 X 37.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대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1789년 4월 4일에 이완이 며느리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한평류성휴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전후로 아이와 며느리가 요절한 일을 위로하였다. 자신은 죽은 딸의 부탁을 지키지 못한 슬픔을 말하면서, 손녀를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었다. 자기 집의 장례는 마을에 천연두가 아직 깨끗해지지 않아서 미루어질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이 찾아가고 싶지만 볼기의 종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주서 형의 병에 대해 물었다. 고산의 공사는 벌목할 때가 아니라서 미루었다고 하였다. 끝으로, 손자가 전염병에 걸린듯하여 피해 옮기려한다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789년 4월 4일, 이완이 며느리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한평류성휴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89년(정조 13) 4월 4일에 服弟 李埦(1740-1789)이 며느리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閑坪柳星休(1738-1819)에게 보낸 편지이다.
女孫이 돌아갈 때 편지를 올리지 못했는데도 편지를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전후로 요절하는 참상이 있었던 것을 위로하였다. 본인은 重哀의 슬픔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女息이 죽으면서 부탁했던 것마저 지키지 못한 슬픔을 토로하면서, 女孫을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그 父子, 男妹가 서로 지내는 형상을 생각함에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襄事는 보름날로 하기로 하신다고 하나, 반드시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의 집의 葬事도 겨우 터를 잡아 아들이 지금 택일하고 지관을 부르려는 차인데, 마을에 痘氣가 아직 멎지 않았고 鄭師도 상대쪽에서 불러간다면 절로 미루어질 것 같다고 하였다. 한 번 찾아가고 싶지만 臀瘇이 아직 낫지 않아 말을 탈 수가 없다고 하고, 疇瑞 형의 병에 대해 물었다. 高山의 역사는 伐木할 때가 아니라서 모두 미루어 두었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손자아이가 처음에는 마마 증세였는데, 끝내 전염병인 듯하여 피해 나가려고 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柳進士服座前
老兄 謹拜謝狀上
嚮於女孫之歸 誠無意筆硏 闕然未
有以書候 情固可慽 然深以逋慢爲
罪 乃蒙不相較計 又
辱手書 感悚之餘 仍審
慈闈體力 一向神相
省餘起居 亦復佳迪 惟是前後瘞夭
之慘 承來愕然 無辭而仰寬也 天之不悔
禍 乃至於此耶 弟 罪積不慈 荐遭逆
理 重哀疊痛 澒洞無涯 而女息臨絶所
眷眷者 亦復失之容易 滿腔哀寃 並無
所訴 誠不欲提說 以重傷止慈之念 而
把筆臨紙 有不能自已 吾亦不自知爲何
心也 奈何奈何 女孫爲勢所迫 不免遣去 雖
幸姑無疾恙 然當初去留之情 已非筆舌可
旣 而念近日渠父子男妹相守之狀 令人心死
況親見其境界者 尤何以爲懷也 襄
事承以望日經紀 然所示兩叚 俱未卜其
必成 尤爲之悲念不已 鄙家寃窆 亦纔
卜地 兒子方擬擇日邀師 頃往貴邊 姑未
知的在何時 然村裏痘氣亦未淨 鄭師
亦爲彼中所邀 則自當遷就 擬欲從
近一往 奉訴滿腔之寃 而臀瘇尙未完
合 欲於跨馬 弟之▣俟全可耳
疇瑞兄所愼▣…▣
巾洗可推矣 ▣…▣
▣也 高山之役 ▣…▣
秋冬或明春月▣…▣
伐木非時 皆已停止 何
必以虛帶爲恨耶
餘 適撓甚 早晩
當一進 姑此不宣 伏

下察 候拜狀上
己酉四月初四日 服弟 李埦

孫孩初似痘候 竟無▣…▣
欲出避營襄計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