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4월 4일, 이완이 며느리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한평의 류성휴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89년(정조 13) 4월 4일에 服弟 李埦(1740-1789)이 며느리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閑坪의 柳星休(1738-1819)에게 보낸 편지이다.
女孫이 돌아갈 때 편지를 올리지 못했는데도 편지를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전후로 요절하는 참상이 있었던 것을 위로하였다. 본인은 重哀의 슬픔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女息이 죽으면서 부탁했던 것마저 지키지 못한 슬픔을 토로하면서, 女孫을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그 父子, 男妹가 서로 지내는 형상을 생각함에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襄事는 보름날로 하기로 하신다고 하나, 반드시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의 집의 葬事도 겨우 터를 잡아 아들이 지금 택일하고 지관을 부르려는 차인데, 마을에 痘氣가 아직 멎지 않았고 鄭師도 상대쪽에서 불러간다면 절로 미루어질 것 같다고 하였다.
한 번 찾아가고 싶지만 臀瘇이 아직 낫지 않아 말을 탈 수가 없다고 하고, 疇瑞 형의 병에 대해 물었다. 高山의 역사는 伐木할 때가 아니라서 모두 미루어 두었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손자아이가 처음에는 마마 증세였는데, 끝내 전염병인 듯하여 피해 나가려고 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