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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789.4717-20120630.000325700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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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완, 류성휴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89
형태사항 크기: 32 X 45.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대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1789년 3월 9일에 이완이 어린아이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한평류성휴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날 서울에서 돌아와 안부를 들었다고 하면서, 어린아이가 죽은 일에 슬픔을 표했다. 현손은 다행히 병이 없지만, 친손자와 외손자를 늙은 아내가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천연두가 유행하여 피신시켰기 때문에 상대방 편에 데려갈 수 없다고 전하고, 병이 나으면 한 번 조문 가겠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류직장의 편지는 이우형 편에 전했는데 받았는지를 묻고, 엽여에게는 바빠서 편지쓰지 못한다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789년 3월 9일, 이완이 어린 아이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기 위해 한평류성휴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89년(정조 13) 3월 9일에 服弟 李埦(1740-1789)이 어린 아이를 잃은 사돈을 위로차 閑坪柳星休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날 서울 조정에서 돌아와 從君 편에 안부를 듣고 위로가 되었다고 하고, 어린아이가 죽어 슬프다는 것을 말하였다. 奏對 때문에 大僚가 論斥을 하여 체직되어 돌아왔는데, 도중에 臀瘇을 얻어 어렵게 왔음을 토로하였다. 顯孫은 다행히 병이 없으나 어미 잃은 친손과 외손 두 아이를 늙은 처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마마가 한창이어서 庶從의 집에 분산 피신시켰다는 것을 말하고, 상대편에서도 데려갈 형편이 못되어 난처하다는 것을 말하였다. 병이 나으면 한 번 조문하러 갈 생각이라고 하였다.
추신으로, 柳直長의 편지는 馬洞李宇衡 편에 전하였는데 받았는지를 묻고 燁如(柳晦文, 柳致明의 아버지)에게는 바빠서 따로 편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柳進士服座前
老兄 謹拜候上狀
邈在千里 從有悲想 日昨歸
來 適因德〖從〗君 爲傳近日
起居狀頗詳 甚慰傾嚮之懷
春氣漸和 未審
慈闈鼎茵 一向康衛
省履一安否 小孩不能保 上
天至仁 故寧忍此 渠雖寃逝
猶有兩箇明珠 用以慰意 今又至此
痛矣痛矣 弟 未滿數月 再見逆理之
慘 千里承音 尤非人理可堪 適以奏
對失當 爲大僚所論斥 徑出違
牌 遂蒙恩遞 卽日離發 歸泊
屬耳 路得臀瘇 艱關作行 一生
行役 未有困於今番 未知今年
是何等厄會 顯孫倖無疾病
失母兩孩 非一老婦所堪 痘火四
熾 未保朝夕 而一室兩姓兒 大爲
俗拘 業已出避 庶從家 雖兒輩迭
相▣安 然渠之來此 已極▣▣▣▣ 若
人之家 思之寃苦 有不可堪矣 萬一染痘 一
時並値 其勢亦有所不暇於渠者矣 卽聞
貴中 亦無挈去之勢云 一▣此事 直是難
處 柰何柰何 餘 稍俟臀瘇完合 準擬
一哭之行 姑此不備 伏惟
下察 謹拜候狀上
己酉三月初九日 服弟 李埦
柳直長書 路逢馬洞李戚宇衡傳去
達否
燁如許 忙不別狀
下布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