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년 3월 12일, 이완이 묘혈 등의 사안으로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79년(정조 3) 3월 12일 戚弟 李埦(1740-1789)이 墓穴 등의 사안으로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외출했을 때 왕림하여 만나지 못한 것을 서운해 하고, 자신은 부모의 牙頰의 통증이 아직 낫지 않았고, 從叔의 喪을 당한 터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였다. 從兄 또한 老將의 솜씨를 지니고도 時文을 짓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였다. 자신은 어제 比安白馬山 아래에 墓穴을 잡아 표식을 해 두었다는 것과, 수령의 摘奸을 받았을 때 龍興寺의 승려가 종전에 禁葬하던 곳이라고 둘러대며 고집하는 뜻이 없어 자신이 반드시 이길 것 같다는 것을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발병이 낫는 대로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봉투에 담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보내준 생선은 어버이께 바치겠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또한 沙村의 葬事日은 이달 24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