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7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779.4717-20120630.000325700870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완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79
형태사항 크기: 25 X 4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대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7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1779년 3월 12일 이완이 묘혈 등의 일로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이 방문했을 때 만나지 못한 일에 대한 유감을 전하고, 자신의 어버이는 치통이 아직 낫지 않았으며 종숙의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자신은 어제 비안백마산 아래에 묘혈을 봐둔 일에 대해 말하고, 발병이 낫는 대로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봉투에 담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보내준 생선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사촌의 장사일이 이달 24일로 정해졌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779년 3월 12일, 이완이 묘혈 등의 사안으로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79년(정조 3) 3월 12일 戚弟 李埦(1740-1789)이 墓穴 등의 사안으로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외출했을 때 왕림하여 만나지 못한 것을 서운해 하고, 자신은 부모의 牙頰의 통증이 아직 낫지 않았고, 從叔의 喪을 당한 터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였다. 從兄 또한 老將의 솜씨를 지니고도 時文을 짓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였다. 자신은 어제 比安白馬山 아래에 墓穴을 잡아 표식을 해 두었다는 것과, 수령의 摘奸을 받았을 때 龍興寺의 승려가 종전에 禁葬하던 곳이라고 둘러대며 고집하는 뜻이 없어 자신이 반드시 이길 것 같다는 것을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발병이 낫는 대로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봉투에 담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보내준 생선은 어버이께 바치겠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또한 沙村의 葬事日은 이달 24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79년 이완(李埦) 서간(書簡)

縣後侍案回納 欠膠未安
湖村李戚謝狀
適自外還 知
尊駕一顧 竟失拚晤 正
爾缺悵 料外
委价專書 伏審
尊庭體力未有撼頓之勞
省餘做味淸裕 不任感
慰之私 弟 親患牙頰 尙
欠全可 從叔之喪 關係
門祚 有何佳況 可奉聞
耶 悲惱汨沒 間以道
途之擾 一味頹廢
明問有及 徒使人愧死愧死
從兄亦少見做時文 老將
之不勇於赴陳 類如此
奈何 弟 日昨占得一穴於
比安白馬山下 左右潔淨 頗少
爭詰 已爲置塚成標 又經主倅
之摘奸 龍興寺僧稱爲從
前禁葬之處 而亦無固爭之意
吾之所執 有可以必勝者 且欲往
還一出 若得尊庭軒蓋
一過 竊欲奉侍杖屨 如何如何
餘 撓甚 不宣狀 容俟足繭
小差 準擬躬請耳 伏惟
下照 謹狀
己亥三月十二日 戚弟

細鱗之惠 辭田
饋親 銘感銘感
沙村葬日 定在今
卄四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