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6년 8월 5일, 김하구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거듭 상을 당한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46(영조 22)년 8월 5일, 楸庵 金夏九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집안 상을 연이어 당한 자신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柳聖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 첫 부분에는 문을 닫고 답답하게 지내면서 상대를 그리는 마음을 애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 같이 종유하며 시구를 읊던 때를 늘 생각하며 그리워했는데, 뜻밖에 상대방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서 마주대한 듯했다고 말하면서 몹시 반갑고 기쁜 마음을 전하였다. 그 편지를 읽고 편안하게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도 멀리서나마 위로되었지만 받은 편지가 몇 달 전에 보낸 것이라서 그 동안의 생활은 또 어떤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아울러 상대방이 슬하의 자녀 상을 거듭 당한 일을 언급하며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도 전하였다. 자신도 근년에 외아들을 잃은 데다 전달에 또 고아였던 조카를 잃는 흉변을 당했는데, 원통하게 요절한 아우가 남긴 조카아이 하나마저 갑자기 죽었으니 같이 죽는 것 밖에는 다른 소원이 없다고 하면서 슬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이 외의 내용으로는 殿中御史를 지낸 권형과 예전에는 달마다 서로 어울렸지만 지금은 연로하여 종유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말하였다. 하물며 상대방인 류성화가 있는 河上과의 거리는 수백 리나 되니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느냐면서 이생에서는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것을 서글퍼하고 있다. 편지 끝 부분에는 博川 수령을 지낸 형이 견책을 당한 일에 대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고, 탄식스럽고 애석한 마음을 전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 김하구(1676-1762)는 자가 鼎甫, 호는 楸庵, 본관은 遂安, 부는 金世熙이다. 1702년 식년시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하고, 1719년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典籍‧殿中御史‧兵曹郎官兼春秋館記事官‧海南縣令을 역임하였다. 김하구는 해남현령을 지내던 해에 모함을 받아서 유배를 갔다가 3년 만에 풀려나 은거하면서 지냈는데, 이 편지가 그때 보낸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 당시 김하구가 일흔의 나이로 연이어 자녀와 조카 상을 당한데다가 가깝게 종유하던 사람들도 연로한 나이 때문에 만날 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서글픈 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피봉 부분을 보면 발급인은 金海南, 수급인은 柳山陰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과거에 김하구가 1730년에 해남현령을 지냈고, 류성화가 1731년에 산음현감을 지냈기 때문에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실제로 편지를 쓸 당시에 두 사람은 모두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생활을 하고 있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