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6년 7월 26일, 권대규가 복을 입고 있는 류성화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자신이 복을 입은 것과 주변소식을 알리는 편지
내용 및 특징
1746년(영조 22) 7월 26일에 權大規가 복을 입고 있는 柳聖和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원근에 자신이 복을 입은 것과 주변소식을 알리는 편지이다.
이 편지는 권대규가 柳山陰에게 보낸 것으로, 류산음은 산음현감을 지내고 있는 류성화이다. 먼저 작년과 금년에 자신의 일이 난리와 같아서 문안편지를 못했으니 다만 서운함이 간절하다고 전했다. 월전에 인편으로 먼저 안부편지를 받아 두텁게 보살펴주는 마음에 놀랍고 감동하여 감사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늦더위에도 잘 있다는 소식을 알아 더욱 자신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했다. 다만 거듭 지극한 슬픔을 만난 것을 알게 되어 놀랍고 슬픔 밖에 다시 무슨 말을 하겠냐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소식을 전했는데, 가운이 불행하여 한여름에 종질부의 상을 당했고 또한 원근에 功服과 緦麻服 입는 사람들의 죽음이 거의 빈 달이 없었으니 늘그막의 회포는 절로 보내기 어렵고, 게다가 쇠약함이 더욱 심하여 온갖 병이 침범하여 신음을 일삼고 있다고 했다.
直川金兄과는 예전에 혹 서로 어울리는 날도 있었지만 근년이래로 각각 쇠약하여 든 병으로 인해 자주자주 서로 만나 상종하지 못했는데 그가 몇 해 전에 연달아 독자와 손부를 잃고 월초에 또 조카의 상을 당했다고 하니 참혹하다고 했다. 편지를 전송했어야 하지만 인편이 없어서 아직 보내지 못했으니 마땅히 인편을 찾아서 전해준 뒤에 답장을 받아 부쳐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발급인 권대규(1676-1747)는 자가 萬則, 호는 耻窩, 본관은 安東이다. 부친은 權得輿이다. 1710년 增廣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여, 171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수취인은 류성화(1668-1748)인데, 자가 介仲, 호는 西湖, 본관은 풍산이다. 西厓 柳成龍의 후손이며, 조부는 愚訥齎 柳宜河이다. 蔭職으로 관직에 올랐고, 1731년에 산음현감을 지냈다. 戶曹參判에 증직되고, 豊陽君에 봉해졌다. 유집이 있다고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