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9년 4월 14일, 권한이 지난번 울산고을의 일은 잘못 전해진 것이므로 류성화에게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9년(영조 15) 4월 14일에 權澣이 지난번 울산고을의 일은 전하는 자가 잘못했고, 근래에 中營 尹戚의 편지를 받았는데 특별히 전하는 것이 없어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전하기 위해 山陰縣監柳聖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한은 우선 천연두 때문에 소식이 막혀서 편지도 또한 빠뜨렸으니 스스로 탄식했다고 한다. 곧 상대방의 편지를 받아서 맑고 화창한 날에 안부를 알게 되어 위로되고 감사하다고 전한다. 다만 연달아 내외의 상을 당하여 놀라고 슬픔을 견딜 수 없고 또한 슬하에 아이와 손자들이 아직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이들이 많아서 미리 대비하며 걱정하는 것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자신은 피곤함이 갈수록 심해져서 겨우 시일을 보내고 근래에 독감으로 고생하다가 비로소 병이 조금 나았다고 하면서 안부를 전했다.
이어 울산고을의 일은 전하는 자가 잘못하였고, 근래에 중영 윤척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특별히 전하는 바가 없었으니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우리 마을에 역병이 나아지고 있지만 깨끗하게 낫는 것은 쉽지 않는 듯하니, 일이 걱정된다고 하고, 올봄에 여러 손자들이 차례대로 천연두를 잘 겪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발급인 권한(1677-1749)은 자가 新之, 호는 芝圃, 본관은 안동으로 조부는 權坵이다. 蔭職으로 가선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문집이 전한다. 1728년 鄭希亮의 난에 손자 權景錫과 창의하였다. 수취인은 류성화(1668-1748)인데, 자가 介仲, 호는 西湖, 본관은 풍산이다. 西厓 柳成龍의 후손이며, 조부는 愚訥齎 柳宜河이다. 蔭職으로 관직에 올랐고, 1731년에 산음현감을 지냈다. 戶曹參判에 증직되고, 豊陽君에 봉해졌다. 유집이 있다고 전한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으로, 우측과 상단에 여백을 조금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