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년 2월 3일, 권한이 체직상소를 올린 중에 있는 류성화에게 그 일에 대한 자신의 뜻과 안부를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7년(영조 13) 2월 3일에 權澣이 사직상소를 올린 중에 있는 柳聖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신의 뜻과도 맞는 것이라 하고, 이어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안부를 전했다.
권한은 먼저 學可 형을 통해서 상대방의 소식이 평안하다는 것을 알아 매우 위로되고 다행스러웠으며, 지금 또 하인 편에 보내온 편지를 받아 안부를 알게 되니 그립다고 전했다. 자신은 보잘 것 없이 보내고 있으며 곧 장례를 치르는 일이 이번 달 20일에 있을 것이라 슬프고 애통함이 심하다고 했다.
이어 울산 고을의 소식은 일전에 온 심부름꾼을 만나 평안하다고 자세히 들었고, 또한 봄에 체직하고 돌아가려 하여 현재는 상소를 올린 상태에 있음을 알았는데 그 허가를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삼년 동안 바다고을에서의 생활이 매우 지루하고 괴로웠으니 당신께서 돌아오는 것이 자신의 뜻과도 맞는 것이라 전했다. 자신은 관인의 일에 매여 마음대로 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어서 떠나고 머무는 것이 고민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 과부와 여러 손자들이 모두 대단한 병을 면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의 아이는 과독을 그만두지 않았으나 집안에 자연스레 일이 많아서 배운 것이 전일하지 못하니, 이것이 매우 관심에 두는 것이라고 했다.
발급인 권한(1677-1749)은 자가 新之, 호는 芝圃, 본관은 안동으로 조부는 權坵이다. 蔭職으로 가선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문집이 전한다. 1728년 鄭希亮의 난에 손자 權景錫과 창의하였다. 수취인은 류성화(1668-1748)인데, 자가 介仲, 호는 西湖, 본관은 풍산이다. 西厓 柳成龍의 후손이며, 조부는 愚訥齎 柳宜河이다. 蔭職으로 관직에 올랐고, 1731년에 산음현감을 지냈다. 戶曹參判에 증직되고, 豊陽君에 봉해졌다. 유집이 있다고 전한다. 이 간찰 내용 중에 나오는 學可 형은 柳泳(1687-1761)을 말하는데 자가 德游 또는 學可, 호는 養眞堂이다. 회당 류세철의 증손이다. 성품이 충후하고 풍모가 반듯하였으며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고 행동이 독실하였다. 그는 무신년 이인좌의 난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그 후 은거하여 조용하게 살았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