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윤4월 9일, 죽봉 김간이 문집 간행에 관한 일과 제주목사로 떠난 김정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5년 윤4월 9일에 竹峯 金侃이 문집 간행에 관한 일과 제주목사로 떠난 金{亻+政}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齋任 중인 수취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간은 상대가 그립던 가운데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아서 재임 중인 상대의 안부를 알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했다. 자신은 병에 걸렸다가 겨우 나았으나 정신과 기운이 나른하여 날마다 쳐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해 왔던 문집간행에 관한 일은 몇 달 내에 완전히 마칠 것이고 앞으로 이어서 원집을 보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문집의 잘못된 부분을 여러 상대방들이 해결할 것이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노병으로 인해 그러한 상황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일족인 김정이 제주목사로 떠났는데, 그가 별 탈 없이 바다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한 선생의 문집은 제3권을 제외하고 찾아 보냈으니 나머지도 찾는 대로 뒤에 다시 보내겠다고 했다.
이 편지의 발급 날짜에서 ‘閏月’은『영조실록』의 날짜기록에 의해 ‘윤4월’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풍산김씨세보』에는 김간의 몰년이 1735년 6월 15일로 나와 있으므로 이 편지는 그가 죽기 전 약 두 달 전에 발급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필적이 다르고 또 병 때문에 사람을 불러 대신 쓰게 했다고 한 점으로 보면 친필 편지는 아닌 듯하다. 본문에 ‘齋履’ 또는 ‘僉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봐서 수취인은 서원 등의 재임에 있고 복수의 사람인 듯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발급인인 김간(1653∼1735)은 자가 士行, 호는 竹峯, 본관은 풍산이다. 부친은 弼臣이며, 모친은 恭人 宣城李氏로 통덕랑天標의 딸이다.『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深谷 金慶祖의 후손이자 풍산오미동 영감댁 金斗欽의 6대조이다. 즉 金慶祖 - 時卨 - 次子 弼臣 - 侃 - 瑞雲 - 有源(系子) - 次子 相穆 - 宗錫 - 重佑 - 斗欽(系子) 등으로 이어지며 심곡파 문중의 한 지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李惟樟의 문인으로 1693년 사마시에 처음 입격하였고,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통정대부호군, 掌隷院判決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洛淵書院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죽봉문집』2책이 있다.
본문에 등장한 제주목사는 김간의 일족인 김정(1670∼1737)이다. 그는 자가 士達, 호는 蘆峯, 본관은 풍산이다. 부친은 輝鳳이며, 모친은 贈 淑夫人 鳳城琴氏로 聖徽의 딸이다.『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鶴沙 金應祖의 후손이며 가계는 金應祖 - 時行 - 次子 輝鳳 - 三子 {亻+政}으로 이어진다. 1708년 문과에 급제하여 內贍寺直長이 되었고, 그 후 강릉부사·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영풍군 梧川書院과 제주의 象賢祠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노봉집』4권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