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34년 김간(金侃)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734.4717-20120630.018725700494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간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34
형태사항 크기: 38.7 X 2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충효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34년 김간(金侃) 서간(書簡)
1734년 8월 3일에 김간이 병산서원 원장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간은 병산서원 원장이 주최한 모임에 류순천이 상복을 입고 있는 중이라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손아랫사람이 상과 상을 지낸지 한 달이 되었으므로 모임에 참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그리고 쇠약한 자신도 모임에 참석할 것임을 알렸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순주

상세정보

1734년 8월 3일, 죽봉 김간이 병산서원 원장이 주관한 모임에 류순천이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자 병산서원 원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4년 8월 3일에 竹峯 金侃이 병산서원 원장이 주관한 모임에 柳順天이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자 병산서원 원장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간은 어제 상대의 편지를 받아서 서원에서 재임하고 있는 상대의 안부를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상대가 자신을 모임에 초청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긴 하나 자신의 근력이 쇠약하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柳順天이 복중이라는 핑계를 대며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상황은 下喪이고 또 상을 당한지 한 달이 지난 뒤이기에 모임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그에게 다시 알린다면 아마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쇠약한 자신도 억지로라도 힘을 내어 그 모임에 참석할 것임을 알렸다.
이러한 여러 정황들을 통해 유추해보자면 아마 병산서원 원장이 주관한 모임은 遞任의 목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임 원장으로 류순천이 지목된 가운데 그가 복제를 핑계로 참여하지 않으려 했고, 이에 대해 김간은 하상 등의 이유를 가지고 그에게 다시 통지하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할 것이라는 조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상은『조선왕조실록』등의 용례를 통해 보면 ‘아랫사람의 喪’ 정도로 볼 수 있으나 류순천이 겪은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당시의 예에서는 하상을 한 달 이상 지내면 재임과 같은 사회적 활동을 다시 할 수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김간의 나이가 여든에 가까웠다는 점, 자신의 호칭을 ‘老弟’로 칭했다는 점, 원장의 초빙 등을 통해 그가 당시 관직생활을 하고 壽를 한 사대부로서 문중 또는 향촌의 대소사에 초빙되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류순천의 경우는 아마 순천부사를 지낸 이력이 있는 류 아무개로 볼 수 있으나『실록』이나『일성록』등의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발급인인 김간(1653∼1735)은 자가 士行, 호는 竹峯, 본관은 풍산이다. 부친은 弼臣이며, 어머니는 恭人 宣城李氏통덕랑天標의 딸이다.『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深谷 金慶祖의 후손이자 풍산오미동 영감댁 金斗欽의 6대조이다. 즉 金慶祖 - 時卨 - 次子 弼臣 - - 瑞雲 - 有源(系子) - 次子 相穆 - 宗錫 - 重佑 - 斗欽(系子) 등으로 이어지며 심곡파 문중의 한 지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李惟樟의 문인으로 1693년 사마시에 처음 입격하였고,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통정대부호군, 掌隷院判決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洛淵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죽봉문집』2책이 있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는 피봉이 있는 경우이며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취인과 발급인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는 착명한 후 ‘謹封’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피봉의 뒷면에는 다시 ‘屛院 山長 案下 入納. 金判決事 在縣 上謝狀.’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34년 김간(金侃) 서간(書簡)

屛院洞主 案下 回納
美洞 竹老 謝狀 [着名]謹封

乍承
尊翰 謹悉
齋履勝相 慰沃何厓 老人
姑留縣上 菫以支遣 昨者
旣蒙面諭 又此書邀 盛
意可感 而自量筋力 萬無
起動之勢 奈何 聞柳順天
託以服制 而已下喪過月後
似無嫌碍若以此意 更通 動
得之 吾雖老病 或可臨時强起
耶 餘呼倩 不具式
甲寅 八月 三日 老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