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2년 2월 12일에 죽봉 김간이 계령종과 관련한 풍문 내용을 알리고 상대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서호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2년 2월 12일에 竹峯 金侃이 계령종과 관련한 풍문 내용을 알리고 상대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西湖 柳聖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간은 이달 7일에 廣寺에서 돌아와 상대가 자신을 방문했다가 돌아간 사실을 알고는 유감을 알렸다. 그 후 다시 상대의 편지를 받아 안부를 확인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은 열흘에서 보름 가까이 집을 떠나 있었는데, 그간 界令從이 당한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그가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가 임금의 비답을 받았긴 했으나 결국 심문은 당할 것이기에 걱정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일 상간에 상대가 찾아 올 것에 대해 기대한다는 의사를 전하며 끝을 맺었다.
편지의 내용상 계령종은 어떠한 일로 인해 대간의 탄핵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간은 그가 대간의 탄핵에 대한 임금의 비답을 얻었다는 풍문을 듣게 되어 크게 잘못될 일은 없을 것 같으나 결국 심문은 받을 것 같다고 여기며 이것이 근심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살펴보면 김간이 절에 있을 때에 이러한 소문을 들었다고 기술한 내용, 7일에 광사에서 돌아왔다는 내용 등을 통해 적어도 영조8년 2월 7일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의 자세한 개요나 계령종의 신원 등은 아직 파악할 수 없다.
발급인인 김간(1653∼1735)은 자가 士行, 호는 竹峯, 본관은 풍산이다. 부친은 弼臣이며, 어머니는 恭人 宣城李氏로 통덕랑天標의 딸이다.『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深谷 金慶祖의 후손이자 풍산오미동 영감댁 金斗欽의 6대조이다. 즉 金慶祖 - 時卨 - 次子 弼臣 - 侃 - 瑞雲 - 有源(系子) - 次子 相穆 - 宗錫 - 重佑 - 斗欽(系子) 등으로 이어지며 심곡파 문중의 한 지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李惟樟의 문인으로 1693년 사마시에 처음 입격하였고,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통정대부호군, 掌隷院判決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洛淵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죽봉문집』2책이 있다.
피봉에 ‘柳生員’이라는 용어와 기존 간찰들의 사례들을 통해 본다면 수취인은 西湖 류성화라고 할 수 있다. 류성화(1668∼1748)는 자는 介仲, 호는 西湖, 본관은 풍산이다. 西厓 柳成龍의 후손이며, 조부는 愚訥齎 柳宜河이다. 음직으로 관직에 올랐고, 1731년에 山陰縣監을 지냈다. 戶曹參判에 증직되고, 豊陽君에 봉해졌다. 유집이 있다고 전한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취인과 발급인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는 착명한 후 ‘謹封’이라고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