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1년 4월 22일, 권상일은 산음현감에 무사히 부임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부임 행차 소식을 알기 위해 사돈인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1년(영조 7) 4월 22일, 권상일이 사돈이 山陰縣監에 무사히 부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의 부임 행차 소식을 궁금해 하며 사돈인 류성화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를 받은 권상일의 사돈 柳聖和(1668~1748)는 本貫이 豊山이며 류성룡의 5대손으로 安東河回에 거주했던 인물이다. 蔭補로 山陰縣監을 지냈는데, 권상일의 일기인 「청대일기」를 통해 볼 때 1732년에 산음현감에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때쯤 산음현감에 부임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권상일이 그 부임 행차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 하며 무사히 산음에 당도하기를 바라는 뜻을 전한 것이었다. 「청대일기」에는 1731년 1월~9월의 일기가 결락되어 있다.
첫머리에서는 사돈의 행차 일정을 헤아려 어제쯤 사돈이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곳에 편지를 전하고자 종을 급히 보냈는데, 사돈의 도착하지 못했다는 소식만 접해 행차가 무슨 이유로 지체되는 것인지 매우 염려했다는 심경을 먼저 쓰고 있다. 그러나 곧이어 사돈의 편지를 받아 먼 길 행차에도 사돈의 심신이 편안하고 또 부임날짜가 조금 미루어져 고향에 잠시 들른 것을 알아서 마음이 매우 놓인다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병세에 대한 상황과 공부를 위해 산방에 들어간 아들이 다음 달 10일 뒤에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썼다. 마지막에는 사돈의 부임 행차가 편안하고 탈 없이 산음에 당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追錄에서 어제 자신이 보낸 편지를 사돈이 받지 못해서 다시 돌아온 사실을 말하며, 인편이 어긋나 바로 전하지 못함을 애석해하였다.
권상일은 두 번째 부인 여주이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煜을 두었으니 정실에게서 얻은 자식은 아들 하나뿐이었다. 권상일은 아들이 16세가 되던 해인 1725년에 하회 풍양군 류성화(1668-1748)의 딸과 혼례를 시켰다. 권상일과 류성화는 이미 오랜 교제가 있던 사이였으며, 사돈을 맺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였다.
편지를 쓴권상일(1679-1759)은 忍齋 權大器의 6세손으로 尙州近嵒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安東이고, 字는 台重, 號는 淸臺이며, 부친은 權深(1664-1729)이고 모친은 慶州李氏이다. 1710년(숙종 36) 增廣文科에 급제한 후, 承文院 權知副正字로 入仕하여 成均館 典籍, 直講, 禮曹正郞, 萬頃縣令, 蔚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淸臺日記」, 權相一, 한국사료총서
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