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6년 9월 26일, 권상일이 며느리의 신행 날짜를 사돈이 보내겠다는 날짜보다 조금 당겨 보내주면 좋겠다고 알리기 위해 사돈인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26년년(영조 2) 9월 26일에 淸臺 權相一이 사돈이 며느리의 신행 날짜와 관련하여 보낸 편지에 답한 것으로, 사돈이 보내겠다는 날짜보다 조금 당겨 보내주면 좋겠다고 알리기 위해 사돈인 豊陽君 柳聖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상일은 먼저 지난 번 편지를 보냈을 때 사돈이 출타 중이라 그 인편에 바로 답장을 전해 받지 못해 사돈의 소식을 바로 알지 못했던 것이 섭섭했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곧 아들이 돌아올 때 사돈의 편지를 받아 보고 편안히 잘 지내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어 기뻤다고 하였다. 이어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자신의 병세를 전하며 근심스러움을 토로하고 그나마 부친이 편안하여 다행이라 하였다. 또, 세상이 평안하지 못할 때 사돈이 어쩔 수 없이 다시 學宮의 重任을 맡게 되었으니 그에 대한 고뇌를 알 만하다고 하였다.
권상일이 이 편지를 쓴 주된 목적은 며느리의 신행 날짜를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이에 앞서 사돈인 柳聖和가 권상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딸을 11월 28일에 보내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권상일은 사돈의 말에 부응하는 것이 좋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11월 21일이 더 편하고 좋다는 뜻을 전하였다. 사돈이 말한 28일은 동짓날이 가까워 반드시 심한 추위가 있을 것이어서 며느리가 어린아이까지 동반하여 오는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전달하며 사돈에게 21일에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상일은 이런저런 주변 소식을 전하며 자신의 심경을 쓰고 있다. 江陵府使金{亻+政}이 체임되었다가 그대로 임명된 소식을 말하며 임금이 덕을 알아준 것이라고 그에 대한 기쁨을 썼는가 하면, 蔚山의 老兄이 사돈을 초대하였으니 너무 추워지기 전에 무사히 다녀오시라는 말과 며느리의 신행을 위해서도 그러길 바란다는 심정을 전하기도 하였다.
권상일은 두 번째 부인 여주이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煜을 두었으니 정실에게서 얻은 자식은 아들 하나뿐이었다. 권상일은 아들이 16세가 되던 해인 1725년에 하회 풍양군 류성화(1668-1748)의 딸과 혼례를 시켰다. 권상일과 류성화는 이미 오랜 교제가 있던 사이였으며, 사돈을 맺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였다.
편지를 쓴권상일(1679-1759)은 忍齋 權大器의 6세손으로 尙州近嵒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安東이고, 字는 台重, 號는 淸臺이며, 부친은 權深(1664-1729)이고 모친은 慶州李氏이다. 1710년(숙종 36) 增廣文科에 급제한 후, 承文院 權知副正字로 入仕하여 成均館 典籍, 直講, 禮曹正郞, 萬頃縣令, 蔚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편지를 받은 권상일의 사돈 柳聖和(1668-1748)는 本貫이 豊山, 字는 介仲, 號 西湖로 류성룡의 5대손으로 安東에 거주했던 인물이다. 蔭補로 山陰縣監을 지냈다. 死後에 戶曹參判에 증직되고 豊陽君에 봉해졌다. 저서로는 『西湖遺稿』가 전한다.
『淸臺日記』, 權相一, 한국사료총서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