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년 10월 17일, 김간이 병산서원에서 원장직을 인수인계 할 때 만나기를 알리고자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 및 특징
1721년 10월 17일에 竹峯 金侃이 상대가 보내준 물품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병산서원에서 원장직을 인수인계 할 때 만나기를 알리고자 西湖 柳聖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간은 우선 덕휴를 만나 상대의 서신을 받은 후 안부를 확인하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늙고 병든 처지에서의 일상과 세금을 독촉 받고 있는 상황 등을 이야기 하며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상대가 잣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러나 수령한 잣의 품질이 오래되어 벌레가 생겨서 쓸 수 없다는 하소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병산서원에 새로 부임한 원장과 인수인계의 목적으로 모이는 자리에 가서 상대와 함께 만나기를 당부했다.
발급인인 김간(1653∼1735)은 자가 士行, 호는 竹峯, 본관은 풍산이다. 부친은 弼臣이며, 어머니는 恭人 宣城李氏로 통덕랑天標의 딸이다.『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深谷 金慶祖의 후손이자 풍산오미동 영감댁 金斗欽의 6대조이다. 즉 金慶祖 - 時卨 - 次子 弼臣 - 侃 - 瑞雲 - 有源(系子) - 次子 相穆 - 宗錫 - 重佑 - 斗欽(系子) 등으로 이어지며 심곡파 문중의 한 지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李惟樟의 문인으로 1693년 사마시에 처음 입격하였고,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통정대부호군, 掌隷院判決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洛淵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죽봉문집』2책이 있다.
수취인은 피봉에 ‘介仲兄’이라는 용어로 봐서 류성화일 것이다. 류성화(1668∼1748)는 자는 介仲, 호는 西湖, 본관은 풍산이다. 西厓 柳成龍의 후손이며, 조부는 愚訥齎 柳宜河이다. 음직으로 관직에 올랐고, 1731년에 山陰縣監을 지냈다. 戶曹參判에 증직되고, 豊陽君에 봉해졌다. 유집이 있다고 전한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취인과 발급인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는 착명한 후 ‘謹封’이라고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