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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김해일(金海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679.4680-20120630.0028257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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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해일
작성지역 전라남도 장흥군
작성시기 1679
형태사항 크기: 28 X 41.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79년 김해일(金海一) 서간(書簡)
1679년 6월 18일에 김해일이 돌아갈 기일이 정해졌는데 그 때 먹을 식량과 말콩을 장만해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김해일은 우선 심한 더위에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돌아갈 기일이 26일로 정해졌는데 돌아갈 때 먹을 식량과 말콩을 장만해 주기를 상대방에게 부탁하고 있다. 또한 민정중 등 5명을 멀리 귀양 보내는 계사(啓事)가 나왔지만 현재 윤허를 받지 못하고 조정은 장을 맞아 죽은 사실을 전하며 편지를 마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679년 6월 18일, 김해일이 돌아갈 기일이 정해졌는데 그 때 먹을 식량과 말콩을 장만해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679년(숙종 5) 6월 18일에 金海一이 돌아갈 기일이 정해졌는데 그 때 먹을 식량과 말콩을 장만해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김해일은 우선 심한 더위에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하였다. 그런 뒤에 자신이 돌아갈 기일이 26일로 정해졌는데 이 때 돌아갈 때 먹을 식량과 말콩을 장만할 계획이 없어서 번거로움을 잊고 아뢴다고 하면서 먹을 식량과 말콩을 주시기를 청하였다. 미안함을 무릅쓰고 상대방의 두터운 은혜를 믿는다고 하고, 또 당신께서 삼가 용서하고 이해해주실 것이라 생각된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청하기도 하였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법률에 살펴보라고 한 청은 이미 한 달이 지났고 閔鼎重(1628-1692) 등 5인을 멀리 귀양 보내는 계사도 또한 나왔지만 현재 윤허를 받지 못하고 趙晸(1719-1692)은 장을 맞아 죽었기 때문에 추국이 이미 정지되었다고 말하였다. 나머지는 이만 줄이고 당신께서 잘 살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고 편지 마지막 부분에 끝인사를 하였다.
민정중은 자가 大受, 호는 老峯이고, 본관은 驪興, 시호는 文忠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장원, 湖南御史를 지낸 뒤 대사헌을 거쳐 이조·공조·호조·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675년 남인이 득세하자 서인으로서 長興府에 유배되었다가 1680년 풀려나 좌의정이 되었다. 1689년 己巳換局 때 남인이 다시 득세하자 碧潼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조정은 무과에 급제하고, 1679년(숙종 5) 강화도에서 墩臺를 쌓을 때에 哨官이 되어 일하던 중, 역모와 관련하여 누명을 썼다. 여러 차례 국문하였으나 끝내 단서가 없어, 변방으로 유배를 명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세 차례 刑訊으로 인해 유배지에 닿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1680년(숙종 6) 5월에 당시 兵曹判書로 있던 金錫胄가 임금께 아뢰어 신원을 회복하고, 訓鍊院判官으로 증직되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李㒖와 함께 김석주가 신임하던 무사였다.
발급인 김해일(1640-1691)은 자가 宗伯, 호는 檀溪이고, 본관은 禮安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63년(현종 4) 문과에 급제하여 成均館學諭, 議政府司錄으로 관직에 들어 1667년(현종 7) 內艱喪 후 복을 마치고, 典籍直講兵曹佐郞兼春秋館記注官持平正言 등을 지냈다. 숙종 때 인조변무의 일로 書狀官이 되어 연경에 다녀오고, 左承旨·慶州府尹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檀溪集』이 전한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尊’, ‘念’, ‘厚眷’ 등과 같은 단어에서 줄을 바꾸는 형식으로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79년 김해일(金海一) 서간(書簡)

伏惟酷熱
尊政體神相 仰慰區區 侍生
三昨始得由還 而冒炎行
役 喝病方劇 私悶奈何 就
恐歸期 定在念六 而此時回
粮馬太 措辦無計 不得不忘煩
仰{氵+慁}〖慁〗 倘蒙
念曁否乎 極知未安 而專

厚眷如是 伏想
恕諒之矣 按律之請 已
閱月 閔鼎重等五人 遠
竄之啓 亦發 而是未蒙
趙晸 杖斃推鞫 已停之
耳 餘不宣 伏惟
尊下察 謹拜狀上
己未六月十八日 朞服人 金海一 頓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