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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2년 김응조(金應祖)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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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응조, 신홍망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작성시기 1662
형태사항 크기: 38.6 X 26.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가송 영천이씨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62년 김응조(金應祖) 서간(書簡)
1662년 4월 7일에 김응조가 벗 신홍망에게 술병과 함께 보낸 안부편지이다. 김응조는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물으며 예전에 해임하고 돌아갈 때 상을 당한 나머지 전별을 못했는데 이제야 한 병의 술을 부쳐 드린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만나지 못하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추록 부분에 한편의 시를 적어 놓았다. 이 시는 김응조의 문집에 「일호주기망구(一壺酒寄望九)」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662년 4월 7일, 김응조신홍망에게 술병과 함께 보낸 안부편지로 예전에 전별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한 병의 술을 부치면서 그를 위해 지은 시와 함께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편지
내용 및 특징
1662년(현종 3) 4월 7일에 金應祖가 벗 申弘望에게 술병과 함께 보낸 안부편지로 당신께서 예전에 해임하고 돌아갈 때 상을 당한 나머지 전별을 못했는데 이제야 한 병의 술을 부치면서 그를 위해 지은 시와 함께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편지이다.
김응조는 우선 맑고 화창한 이 계절에 당신께서 잘 지내고 있는지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당초에 당신께서 해임하고 돌아가던 날에 마침 상을 당해서 한 잔의 술로도 전별하지 못했으니 이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것을 지금까지도 뭐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술병을 드리려고 했으나 맛이 싱거워 마실 만하지 못하니 먼 길 가는 당신에게 드리기에는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여 청주로 바꾸어 드리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마침 관에 가는 인편을 만나 감히 부쳐서 보내드리니, 실로 옛날에 한잔 술로 전별해 드렸어야 할 것과 매 한가지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차라리 해후하는 것만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편지의 내용이 끝나고 추록 부분에 다음과 같이 한편의 시가 있는데, 김응조신홍망의 두터운 친분이 확인된다. 한잔의 유하주에 변함없는 이내마음/ 봉한 편지에 옛정이 깊은 것을 누가 알리오/ 옥처럼 아름다운 사람 생각하며/ 마침 오주의 달 아래에서 술을 따르네/ 위의 시는 문집에 「一壺酒寄望九」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한 병의 술을 신홍망에게 부치며 지은 것으로 작자가 신홍망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 시에서 특히 마지막 구절 "好向吳洲月下斟"은 李白의「送張舍人之江東」의 끝부분인 "吳洲에서 달을 보거든, 천리 밖에서 나를 생각해 주오[吳洲如見月, 千里幸相思.]."를 연상케 한다. 곧 멀리 있는 벗을 생각하는 것이다. 시에서 그리워하는 대상인 옥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친구 신홍망을 가리킨다. 그리고 유하주는 신선이 마신다는 맛 좋은 술을 이르는데, 이 좋은 술을 마시면서 같이 마시지 못한 친구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를 위해 한 병의 유하주 술을 부치며 시를 읊고 있다.
발급인 김응조(1587-1667)은 자가 孝徵, 호는 鶴沙이고, 부친는 金大賢이며, 본관은 豊山이다. 柳成龍張顯光의 문인이다. 1613년 생원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때 입사할 뜻을 두지 않고 위기지학에 힘썼다. 1623년 문과에 급제하여 密陽府使로 있을 때 교학에 힘썼다. 獻納修撰校理禮曹參議工曹參議漢城府右尹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鶴沙集』․『追遠錄』․『辯誣錄』․『四禮問答』등이 전한다. 수취인 신홍망(1600-1673)은 자가 望久, 호는 孤松이고, 부친은 申之悌이고, 본관은 鵝州, 義城에 살았다. 1627년 진사에 합격하고, 1639년 문과에 급제하여 注書·持平·正言·豊基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52司憲府持平으로 있을 때 탄핵되어 2달간 벽동으로 유배되었다. 1659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학교를 일으키고 교육에 힘썼다. 저서로는 『孤松集』이 전한다.
단문(袒免): 8촌 이하의 복에서 두루마기 따위의 윗옷의 소매를 벗고 머리에 사각건을 쓰는 상례(喪禮)를 말한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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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662년 김응조(金應祖) 서간(書簡)

卽惟淸和
德履起居 珍相 當初
解歸之日 適有袒免之慘 未
能以盃水 餞別焉 此心耿耿
迨不可指 擬以酒壺委呈 而
味淡 不堪飮 陳之遠程 似甚悚
愧 欲更靑而未果 適逢官便
敢以付去 實與古之盃水一揆也
此 無與有邂逅 臨紙悽然 伏惟
情諒 謹狀
任寅 四月 七日 應祖

一斝流霞一片心 緘封誰
識古情深 相思有美
人女玉 會向吳州月下斟
日前 有書及拙句得達否 竝
和聲是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