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0년 4월 24일, 홍여하가 유배지에 있으면서 들은 여러 상사에 관해 언급하고 자신의 사면 소식을 들었음을 알리기 위해 김생원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660년 4월 24일, 木齋 洪汝河가 유배지에 있으면서 들은 여러 喪事에 관해 언급하고 자신의 사면 소식을 들었음을 알리기 위해 金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편지를 받고는 안부를 확인하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병을 지닌 채 그런대로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형의 再期[大祥]가 머지않아 있을 것이고 질녀의 하관날도 이미 정해졌으나 유배 온 상황에 구애되어 가서 곡할 수가 없다고 하며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외에도 여러 지인들의 初喪 소식들도 들었기에, 유배 온 후 매번 이러한 소식만 듣게 되어 마음이 힘들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서울에서부터 사면 소식을 가지고 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석방되는 것은 임금의 결정에 달려있기에 감히 바랄 수 없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상대와 떨어져 지내며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기에 매우 암담하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洪汝河(1621~1678)는 자는 伯源, 호는 木齋, 본관은 缶林이다. 부친은 洪鎬이다. 1654년 식년시 을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藝文館檢閱 ․ 京城判官 ․ 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木齋集』․『彙纂麗史』․『東史提綱』․『經書解義』등이 전한다. 그는 1660년에 조정에서 權堣와의 일로 忠淸道黃澗에 유배된 이력이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그가 유배지에 있으면서 발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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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單封의 형식의 피봉이 존재한다. 따라서 수취인은 피봉에 적힌 대로 ‘金生員’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생원이 확실히 누구인지는 이 정보 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에서 사용된 ‘尊丈’, ‘尊下書’, ‘尊體起居’, ‘尊下照’ 등의 용어를 통해 발급인은 수취인을 ‘尊者’로 표현하며 높이고 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자신을 표현하는 용어로 ‘侍生’을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수취인은 발급인보다 비교적 높은 연배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 편지는 回文의 형식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리고 피봉은 단봉의 형태이기는 하나 따로 떨어진 피봉이 아니기에 유의하여 봐야 한다. 맨 우측 두 줄과 그 사이 하단에 착명된 부분 까지가 피봉으로 볼 수 있으며, 이 피봉의 경우는 우측에서 좌측의 순서로 읽는다. 본문은 우측에서 셋째 줄 ‘伏承’에서부터 시작하여 내용이 이어지고, 맨 좌측에 연월일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고문서 등 옛 글에서는 상대 또는 윗사람을 높이기 위한 표현으로 擡頭 또는 隔字를 사용한다. 이 편지의 경우는 4번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시했고, 모두 極行을 썼으나 임금과 관련하여 더욱 높인 부분이 1번 존재한다. 격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