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이동표(李東標)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0000.4792-20120630.002325700896_2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동표, 홍○○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형태사항 크기: 27 X 3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가송 영천이씨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이동표(李東標) 서간(書簡)
○○년 4월 7일, 이동표가 역병에 걸리지 않기를 당부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발신인은 洪書房으로 추정된다. 먼저 상대의 소식을 들어 다행이라고 하며 역병이 도는 상황에서 바깥출입을 삼가고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상대의 어머니와 洗馬兄은 현재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묻고 항상 경계하라고 하였다. 또한 李君이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 위로되고 다시 한 번 역병을 경계하라고 당부하며 편지를 마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년 4월 7일, 이동표가 고을에 역병이 도는 상황에서 밖으로 나오지 말고 병에 걸리지 않기를 당부하기 위하여 홍서방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년 4월 7일, 懶隱 李東標가 고을에 역병이 도는 상황에서 밖으로 나오지 말고 병에 걸리지 않기를 당부하기 위하여 洪書房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어제 龍宮을 지나면서 상대에게 부친 편지를 잘 받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집에 도착하여 상대가 新寺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역병이 도는 상황에서 바깥에 나와 사람들과 서로 접촉한다면 병을 피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다음으로, 상대의 어머니와 洗馬兄은 현재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묻고, 또 그들이 浦內里에 있는 거처에서 나왔는지 여부도 물었다. 상대의 집안에 돌았던 역병에 대해 모두가 의심했는데도 상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상황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근래에 마을에도 이와 같은 병이 많이 발생하여 매우 혹독한 상황이기에 항상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라고 타일렀다. 또 상대가 병을 경계하지 않아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어제 받은 상대의 편지에 이미 君이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위로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역병을 경계하라고 당부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李東標(1644∼1700)는 자는 君則, 호는 懶隱, 본관은 眞城이며, 시호는 忠簡이다. 부친은 李雲翼이다. 1683년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成均館典籍弘文館副修撰 등을 역임했다. 己巳換局 때 襄陽縣監으로 좌천되었고, 이후 여러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吏曹判書에 증직되었고, 元山書院에 제향 되었다. 『懶隱集』이 전한다.
이 편지의 피봉은 따로 떨어진 피봉이 없는 單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피봉이 문서 뒷면에 있고, 현재 배접되어있는 상황이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 드러나는 형태를 보면 좌측에는 ‘洪書房 寓所’, 우측에는 ‘奉狀’, 그리고 하단 양측에 봉합처로 추정되는 부분에는 ‘[着名]謹封’이 각각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발급인은 상대를 ‘君’이라 지칭 하고, 또 내용 전반적으로 타이르는 말투를 사용 하고 있으며, 본문의 끝에 ‘不具’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성명 대신 字인 ‘君則’를 쓰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면 수취인은 발급인 보다 연배가 낮은 인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의 수취인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발급인인 이동표에게 사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는 ‘홍서방’일 가능성이 높다. 洪氏 가운데 이동표와 사돈을 맺고 있는 인물은 木齋 洪汝河이다. 따라서 홍서방은 홍여하의 자식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본문의 ‘洗馬兄’의 경우도 홍여하의 아들 중 洗馬翊衛를 지낸 경력이 있는 洪相民(1654~1727)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편지는 回文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우측에서 1/4 정도 되는 지점 즉 5번째 줄의 ‘昨過龍宮’에서부터 내용이 시작된다. 그리고 좌측 상단, 우측 상단으로 이어지고, 다시 맨 우측 편으로 내용이 이어지면서 반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읽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측 4째 줄 부분에 이 편지를 발급한 월일과 성명을 기재하고 있다. 또 이 편지의 상단에 일부 결락된 부분이 있으나 글자를 판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고문서 등 옛 글에서는 상대 또는 윗사람을 높이기 위한 표현으로 擡頭 또는 隔字를 사용한다. 이 편지의 경우는 8번의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시하였고, 모두 극행을 사용하였다. 격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이동표(李東標) 서간(書簡)

昨過龍宮 作一書寄去 卽傳
否 到家 聞
來寓新寺云 稍以爲幸
然不免相通 則與不避
無異 千萬
謹之謹之
大碩人及洗馬兄 方留在
何處 伏想於浦內里
寓出耶
宅裏憂患 自初人皆
疑之 而
君不疑之 近來人家 多如此之病 而
末終遭禍甚酷 千萬
切勿相通 亦勿以症不涉疑爲狃 而
取日後無窮之悔也 昨書已
李君同寺云
爲慰 忙擾
不得各幅
爲告其所
極縷縷 而今又不知止 惟
願勿泛聽也 不具
四月七日 君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