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2월 18일, 월탄 김창석이 상대에게 모임 날짜를 알리고 오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년 2월 18일, 月灘 金昌錫이 상대에게 모임 날짜를 알리고 오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처음 여름에 보내준 상대의 답장을 받아 안부를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島院의 변고를 겪은 뒤로 편치 않은 상황임을 알렸다. 다음으로 자신은 여러 벗들과 함께 여러 날 안동 부내에 머물면서 모임 시기를 21일로 정했고, 金侃 역시 그 점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상대가 보낸 單子는 뜻밖이며 春享이 이미 임박했을 뿐만 아니라 사림들의 대의가 막 일어나고 있으니 지금은 그러할 때가 아님을 알렸다. 따라서 다시 단자를 돌려보내니 단자를 올리는 것을 그만두고 21일 날 모임에 오기를 요청 하였다. 추신으로 상대의 안부를 듣고 위로가 되었다고 하며 節祀 때문에 府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상황을 알렸다. 그래서 서로 만날 수 있을지 여부를 물었다.
발급인인 김창석(1652~1720)은 자는 天與, 호는 月灘 ․ 夢仙道客, 본관은 의성이다. 아버지는 壽職으로 중추부동지사를 지낸 金履基이다. 1687년 진사시에 입격, 1690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승문원부정자 ․ 제원찰방 ․ 아계찰방 ․ 성균관박사 ․ 성균관전적 ․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노론이 집권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내앞의 동쪽 輞川으로 이주하여 지냈다. 의성김씨 三學士 중의 한 사람으로 시 ․ 서 ․ 화 삼절로 일컬어진 인물이다.
이 편지는 현재 피봉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정확한 수취인은 알 수 없다. 본문에서 자신을 ‘再從’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상대와는 촌수로 6촌정도 되는 친척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확인되는 ‘사행’은 풍산김씨 문중 출신 김간의 자이다. 여러 정황상 상대가 보낸 단자는 사직단자로 보인다. 즉 상대를 서원의 재임 또는 원장직에 임명하려 했으나 그가 단자를 보내 취임하지 않을 뜻을 보내자 춘향이 임박했다는 사실과 여러 사림들의 대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일단 모임에 나오기를 청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추신의 내용은 편지의 형태 상 별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 가운데 상대의 편지를 받은 정황이나 부에 머물고 있다는 점 등 비슷한 내용을 적은 점으로 봐서 본 편지의 수취인과는 다른 수취인일 가능성도 있다. 편지의 우측 첫줄은 ‘以正謹謝狀上’으로 본문의 내용과는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에 점련된 다른 편지의 일부분이 잘못 떨어져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는 우측 점련처에서 왼쪽으로 셋째 줄 ‘承’에서부터 내용이 시작하며 한 바퀴 돌아 우측에서 둘째 줄에 연도 없이 월일과 성명을 기재한 회문형식이며 행간에 이어 적지는 않았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편지에서는 총 4번 정도 대두와 격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