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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조(金奉祖)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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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봉조, 경광서원 문회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38.6 X 26.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가송 영천이씨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김봉조(金奉祖) 서간(書簡)
○○년 4월 5일, 김봉조가 경광서원의 문회에 보낸 편지이다. 상대가 부탁한 부조인 목향은 구하기가 어려워 곡식으로 바꾸어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강서원의 인편이 근래에 왕래가 없어 이를 전달하기 어려우니 편지와 함께 부조에 관한 일이 적힌 문서를 상대편의 하인에게 시켜 바로 안동 부내 서원에 속한 사령에게 전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또한 황산사의 수군 일족 일은 승도들이 흩어지고 또한 양전소(量田所)의 종이를 만드는 일이 부과된 상황이니 여강서원의 장무를 불러 종이를 만드는 일을 자세히 묻고 역을 덜어준 후에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순주

상세정보

○○년 4월 5일, 학호 김봉조가 상대가 부탁한 부조에 관한 일을 알리고 황산사 승려들의 종이 만드는 일을 덜어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경광서원의 문회에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년 4월 5일, 鶴湖 金奉祖가 상대가 부탁한 부조에 관한 일을 알리고 黃山寺 승려들의 紙役을 덜어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鏡光書院의 文會에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편지를 계속해서 받아 안부를 확인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상대가 부탁한 부조에 관해서는 구하기 어려운 木香을 곡식으로 대처하여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강서원의 인편이 근래에 왕래하지 않아 이를 전달하기 어려움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이 편지와 함께 부조에 관한 일이 적힌 牌子를 상대편의 하인에게 시켜 바로 안동 부내의 서원에 속한 사령에게 전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또한 황산사의 수군 일족에 관한 일 때문에 승도들이 뿔뿔이 흩어진데다가 이에 보태어 양전소의 紙役까지 무겁게 부과된 상황을 알렸다. 그래서 만일 그나마 남은 승려들에게 까지 역을 바치게 한다면 반드시 모두 흩어질 우려가 있기에 여강서원의 장무를 불러 紙役에 관한 사정을 자세히 묻고 또 양전소에 통유하여 역을 덜어준 후에 대처하기를 바라며 더디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발급인인 김봉조(1572∼1630)는 자는 孝伯. 호는 鶴湖. 본관은 풍산이다. 부친은 이조참판에 추증된 大賢이다. 柳成龍의 문인이다. 1601년 사마시에 입격, 1613년 증광문과 갑과로 급제, 司䆃寺直長에 임명되었으며,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丹城縣監경상도도사익산군수예조정랑사헌부지평성균관직강濟用監正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학호문집』3권이 있다. 榮川의 鷗湖書阮에 제향 되었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취인과 발급인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착명하였다. 피봉의 내용으로 보면 수취인은 경광서원 문회에 소속된 복수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 내용에서도 ‘僉辱問’, ‘僉雅履’, ‘僉尊照’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편지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상대 서원에 쓰일 물품을 부조하는 일과 황산사 승려들의 지역을 감해주는 일이다. 부조에 관한 일의 경우 당시 발급인이 있었던 곳에서는 목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발급연도가 확실하지 않아 당시 그가 어떤 관직을 수행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만일 지방관을 하고 있었다면 그가 다스리던 고을은 이러한 물품이 생산되기 어려운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물품을 관리하던 경관에 재임하고 있었다면 당시 서울지역에서 이러한 물품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도만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곡식의 유통이 오늘날 화폐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곡식으로 물건을 맞바꿀 수 있는 물물교환경제사회였음도 알 수 있다. 승려에 관한 일은 당시 사회신분 구조상 승려의 지위가 현격하게 낮았음을 알 수 있으며, 紙役과 같은 역역을 당해지역의 승려들이 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역은 여강서원과 같은 서원 양전소에서 사용될 종이 제작 까지 사적으로 승려들이 부담하고 있었고, 이것이 그들에게 상당한 부담이었기에 이를 피하여 도망하는 사례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는 피봉 부분을 제외한 우측에서 왼쪽으로 셋째 줄 ‘續奉’에서부터 내용이 시작하며 상단 여백에 이어 적고 다시 우측에서 둘째 줄인 ‘僉尊照 謹狀上謝’를 적은 후 첫째 줄에 월일과 성명을 기재한 회문형식이다. 행간에 이어 적지는 않았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편지에서는 총 7번 정도 대두와 격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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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김봉조(金奉祖) 서간(書簡)

僉尊稧上謝狀
鏡光文會
[着名]謹封

續奉
僉辱問 謹審
僉雅履佳勝 感慰伏切 所
敎扶助事 若以穀石 奉呈
則不如木香之甚難 當依
命以送 而江院之人 近無往
來之事 傳喩甚不易 今去
牌字 幸
令下人 卽傳于府內院屬使
令 如何 寺僧亦何敢惜
但黃山以水軍一族事 僧
徒流散 加之量田所紙役
最重 今若又使之來供
則必將盡散 亦欲招江院
掌務 細問曲折 且通喩
量田所 除其紙役然後 徐有以
處之耳 幸
勿遲之如何 伏惟
僉尊照 謹狀上謝
淸和 初五 奉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