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월 3일, 회당 류세철이 상대에게 안부를 묻고 안동에서 사람이 잡혀간 사건의 정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년 ○월 3일, 悔堂 柳世哲이 상대에게 안부를 묻고 안동에서 사람이 잡혀간 사건의 정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와 만나 수일 동안 같이 지냈던 일을 이야기 하며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상대의 현재 상황을 묻고는 자신은 집으로 돌아와 안정이 된지 삼일이나 지나서 앞으로 좋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하였다. 安岳翁의 병은 현재 잠시 덜해졌으나 고된 노역으로 인해 거의 견딜 수 없는 지경임을 말하였다. 그래서 기한 내에 절대로 인사를 닦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안동에서 잡혀 서울로 올라간 사람에 대한 사건을 언급하며 그들은 다만 귀신같은 무리들에게 연루되었고,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 때문에 관찰사에게 추국을 당했던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호남 유생들을 언급하며 ‘끝까지 형벌을 가해서라도 사건의 정황을 캐내라’는 임금의 啓가 내려졌음을 알렸다. 추신에서는 자신이 행중에 소요하고 남은 물건을 부쳐 보내니 헤아려 받아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諺書도 보낸다고 하였다.
발급인인 류세철(1627~1681)은 자는 子遇, 호는 悔堂, 본관은 풍산이다. 증조부는 류운룡이고, 조부는 柳裿이다. 백부인 류원직에게 14세 때 입양되었다. 생부는 류원리이다. 그는 柳元之에게 수학하였다. 1654년 사마시에 합격, 내시교관 ․ 동몽교관 ․ 사복시주부 ․ 공조좌랑 ․ 군위현감 등을 지냈다. 1666년 40세 때 기해 복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영남 사림의 疏首가 되었다. 저서로는『悔堂文集』4권이 있다.
이 편지는 현재 피봉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정확한 수취인은 알 수 없다. 본문에서 자신을 ‘生’이라고 표현 한 것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상대보다 연배가 낮은 경우이나 이도 정확하지는 않다. 또한 상대의 안부를 묻는 대목에서 ‘還生做況’이라는 말을 쓴 것으로 보면 상대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본문에서 확인되는 안악옹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안악이 택호인 인물인 듯하다. 안동에서 사람이 잡혀 올라간 사건의 경우는 호남 유생과 관련되어있고, 임금의 계가 내려진 것으로 보면 아마도 당시 예송과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 추측 해 볼 수 있으나 이 편지의 발급연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는 우측에서 왼쪽으로 셋째 줄 ‘積阻中’에서부터 내용이 시작하며 상단 여백에 이어 적고 다시 우측 여백에 날짜와 성명을 기재한 회문 형식이며 우측 첫째 줄과 둘째 줄에는 추록을 기재하고 있다. 행간에 이어 적지는 않았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편지에서는 총 5번 정도 대두와 격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이 편지는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엮은「先賢筆蹟」 안에 수록되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