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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이노(李奴) 맹창(孟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E.1799.4717-20120630.000425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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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김백창, 맹창, 권봉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99
형태사항 크기: 45 X 3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법흥 고성이씨 탑동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9년 이노(李奴) 맹창(孟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9년 11월 18일, 김백창성황당원에 있는 밭을 화폐 8량을 받고 고성이씨의 종인 맹창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직접 매매에 관여하지 않고 집안의 종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있었고,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종이 있기도 했다. 맹창도 주인을 대신해서 매매에 관여했다. 계약서의 작성 시기는 1799년인데, 계약서에는 청의 연호인 ‘가경4년’으로 표기하였다. 일반문서나 일기는 간지에 입각해 시간을 나타내고 있으나 토지매매계약서는 공식적인 문서이기 때문에 연호를 사용했다. 본 계약서에는 파는 사람 김백창이 서명하고, 증인 권봉은 왼손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그려서 표시하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하였다. 이를 수촌(手寸)이라고 하는데, 양인이나 노비로서 글을 모르는 경우 남자는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그려서 표시하고, 여자는 오른쪽 손가락 마디를 그렸다.
서은주

상세정보

1799년 11월 18일, 金伯昌城隍堂員에 있는 連字 밭 4負 4束을 8兩 받고 李奴孟昌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
내용 및 특징
1799년(정조 23) 11월 18일, 金伯昌城隍堂員에 있는 連字 밭 4負 4束을 8兩 받고 李奴孟昌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일반적으로 매매명문에는 거래일, 매입자, 방매사유, 방매토지의 전래 경위, 방매토지의 소재지와 규모, 방매 전답의 가격, 방매자 및 증인과 筆執의 신분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문은 김백창이 이씨 성의 奴 맹창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직접 매매에 관여하지 않고 家奴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있었고,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奴가 있기도 했다. 맹창도 주인을 대신해서 매매에 관여했다. 이 문기에는 토지의 전래 경위가 생략되었고, 방매사유는 ‘切有用處’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전기에는 토지매매가 엄격했기 때문에 전래경위와 방매사유를 명확하게 표기했으나, 조선후기 토지매매가 활발해짐과 동시에 매매사유를 간략하게 표기하는 사례도 많다.
매매명문의 작성 시기는 1799년인데, 명문에는 청의 연호인 ‘嘉慶四年’으로 표기하였다. 일반문서나 일기는 간지에 입각해 시간을 나타내고 있으나 토지매매명문은 공식적인 명문이기 때문에 연호를 사용했다. 밭의 소재지는 ‘城隍堂員’만 적어 놓아서 지역과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매매자 사이에는 적지 않아도 서로 증명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永嘉誌』에는 ‘城隍祠가 안동부 동쪽 6리에 있다’고 한다. 『안동향토지』에는 ‘성황당 토성이 있던 터는 현재 용상동성황산에 있으며, 동편은 오로봉에 감싸고, 서남에는 낙동강이 둘러, 府를 방위함에 긴요했다’라고 기록되어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성황당원의 남쪽에는 馬坪院이 위치하는데, 이 지역은 고성이씨가 토지를 집적해 나가던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이다.
매매명문의 ‘城隍堂員連字五十二’ 가운데 ‘城隍堂員’은 밭의 소재지이고, ‘連字’는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매겨진 전답의 字號이며, ‘五十二’는 지번이다. 본문의 말미에는 차후 이 거래와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면 이 문서를 증거자료로 삼아 관에 고하여 바로 잡으라고 했다. 이는 매매명문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문건임을 말한다.
마지막에는 방매인, 증인, 筆執이 각각 신분과 함께 성명을 기록하고 그 밑에 署押을 하는데, 양인 이상의 남자는 대체로 수결을 한다. 본 명문에는 방매자 김백창이 서압하고, 증인 權奉은 왼손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그려서 표시하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하였다. 이를 手寸이라고 하는데, 양인이나 노비로서 글을 모르는 경우 남자는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마디를 그려서 표시하고, 여자는 오른쪽 손가락 마디를 그렸다. 명문의 오른쪽 상단에 침수된 흔적이 있지만, 종이와 글씨 상태는 양호하다.
『韓國法制史攷』, 朴秉豪, 법문사, 1987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崔承熙, 지식산업사, 2003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李在洙, 집문당, 2003
『16세기 한국 고문서 연구』, 이수건 외, 아카넷, 2004
『안동학연구』 6집, 이욱, 한국국학진흥원, 2010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9년 이노(李奴) 맹창(孟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嘉慶四年己未十一月十八日李奴
孟昌處明文
右明文事段矣身切有用
城隍堂員連字五十二田
四負四束庫乙價折錢文捌
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
雜談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

田主 金伯昌 [署押]
證人 權奉 [左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