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안동군 임현내면(臨縣內面) 천전동(川前洞)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
川前洞은 조선후기 안동군臨縣內面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盤市洞 일부를 병합하여 천전리(동)이 되었다. 1931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안동군臨河面에 편입되었고,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임하면천전리가 되었다.
천전동[내앞]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지닌 마을이다. 마을 뒤쪽으로 지내산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 반변천이 동에서 서로 굽이쳐 흐르며, 천변에는 솔숲으로 이루어진 인공 섬이 있다. 천전동은 의성김씨 靑溪派의 동성마을로 유명하다. 입향조는 金萬謹이며, 손자인 靑溪 金璡 代에 오면서 가문이 크게 번성하였는데, 그의 다섯 아들은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명망이 드높은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천전동은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안동 최초의 근대학교인 협동학교가 설립되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자연 마을로는 西惄, 장구날[長皐], 빗골[雨谷], 구목골[雲谷], 茅室[茅谷], 廣山, 두무골[豆茂谷], 半市[店里] 등이 있다. 서녁은 내앞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의성김씨 청계파의 대종택과 청계공의 차남 龜峯 金守一의 종택이 있다. 장구날은 내앞 남쪽의 긴 산기슭에 이어져 있으며, 그 모양이 長鼓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빗골은 내앞 동쪽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내앞 본동에 비가 올 때 대개 여기서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구목골은 내앞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골이 좁아서 항상 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이 어둡게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모실은 내앞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구목골 뒤쪽에 있다. 그 부근 지역에 띠[茅]가 잘 자라고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마을 명칭이 유래되었다. 광산은 철분 및 검은 색깔의 토질이 많으며 옛날에 연쇠를 채취하여 팔았다고 하여 그 명칭이 생겨났다. 두무골은 豆太농사를 주로 하여 이름 붙여졌다. 반시는 마을에 시장터가 있고 장이 섰다고 하여 붙여졌으며, 옹기굴과 옹기점이 있어 점리로도 불렸다.
천전동은 그 명성에 걸맞게 그윽한 고가옥이 즐비하며 많은 문화재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義城金氏宗宅(보물 제450호), 雲川扈從日記(보물 제484호), 靑溪金璡影幀(보물 제1221호), 白下舊廬(경상북도 기념물 제137호), 龜峯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 霽山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29호), 耻軒(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호), 楸坡古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2호) 등이 있다.
1913년 현재 천전동에는 權氏, 金氏, 南氏, 朴氏, 裵氏, 孫氏, 宋氏, 申氏, 沈氏, 安氏, 李氏, 張氏, 田氏, 趙氏, 河氏, 洪氏, 黃氏 등 적어도 17개 이상의 성씨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김씨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朝鮮の姓』에는 의성김씨 150호가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日帝下 朝鮮土地調査事業 計劃案의 變更過程」, 남기현, 『史林』 32, 수선사학회, 2009
『朝鮮土地調査事業硏究』, 愼鏞廈, 韓國硏究院, 1979
『朝鮮土地調査事業の硏究』, 宮嶋博史, 東京大學 東洋文化硏究所, 1991
『朝鮮の姓』, 朝鮮總督府, 龍溪書舍, 2002
『安東의 地名由來』, 안동시립민속박물관, 安東民俗博物館, 2002
『朝鮮の姓』, 朝鮮總督府, 龍溪書舍, 2002
『安東의 地名由來』, 안동시립민속박물관, 安東民俗博物館,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