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고종 19) 9월, 고종이 가선대부 이조참판(嘉善大夫 吏曺參判)이돈우를 겸동지춘추관사(兼同知春秋館事)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882년(高宗 19) 9월 ○일에 高宗이 嘉善大夫 吏曺參判李敦禹를 兼同知春秋館事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 下階, 이조참판은 종2품직이다. 그리고 동지춘추관사는 춘추관의 동지사로 종2품직이다. 그리고 관직명 앞에 兼자가 붙은 것은 이 관직이 겸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는 같은 해 8월에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임명된다. 그리고 이 문서를 통해 그가 겸직에 제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품계나 관직을 내릴 때 발급되는 교지이다. 그에게 종2품 가선대부와 이조참판 겸동지춘추관사의 품계 및 관직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 형식의 교지가 발급된 것이다. 5품 이하는 臺諫의 署經을 거쳐 이조 ․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하며, 문서식도 이조나 병조가 왕명을 받들어 임명한다는 의미의 ‘奉敎’를 쓴다. 하지만 4품 이상은 서경을 거치지 않고 왕명에 의해 바로 임명되며 문서 첫머리에 ‘敎旨’를 쓴다. 그리고 연호 아래에 ‘施命之寶’를 찍는다.
『대전회통』『吏典 ․ 追贈』 條에 의거하면, 종친 및 문무관원으로서 실직 2품 이상인 자는 그의 父祖 3대를 추증한다고 되어있다. 이 문서의 발급 전 같은 해 8월에 종2품 이조참판에 제수되었고, 이 문서가 발급된 9월에 위의 겸직이 제수되었다. 그리고 10월에 그의 증조부 李埦(1740~1789), 조부 李秉運(1766~1841), 부친 李秀應(1789~1864) 모두 추증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문서가 남아있다.
李敦禹(1807~1884)는 자는 始能, 호는 肯庵, 본관은 韓山이다. 부친은 梅窩 李秀應(1789~1864)이며, 大山 李象靖(1711~1781)의 현손이다. 1807년 安東府一直縣蘇湖里에서 태어났다. 1850년 增廣試 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는데, 이와 관련한 홍패가 있다. 이후 承文院正字 ‧ 典籍 ‧ 校理를 역임했다고 하나 이와 관련한 문서는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1860년 2월에 그의 부친인 이수응을 通政大夫의 품계로 加資해 주는 告身이 있는데, 그 문서에 기재된 발급사유에는 ‘侍從臣司諫院正言李敦禹’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를 통해 그는 1860년 즈음에 정6품 사간원정원직을 역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870년 윤10월에 정3품 通政大夫에 加資되었다. 저서로는 『肯庵集』이 전한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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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