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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이영운(李永運) 백패(白牌)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A.1783.1100-20120630.000325700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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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백패
내용분류: 정치/행정-과거-백패
작성주체 정조, 이영운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783
형태사항 크기: 46 X 9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대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3년 이영운(李永運) 백패(白牌)
1783년 10월 3일, 정조이영운에게 생원진사시에서 100명중 13등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해준 문서이다. 합격 당시 이영운은 유학신분이고 나이가 18살 이었다. 그는 후에 이름을 이병운으로 개명하고 1797년에 음직으로 혜릉참봉에 임명되고, 후에 함창현감청안현감 등을 역임한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진옥, 집문당, 1998
김인호

상세정보

1783년 10월 3일, 정조이영운에게 생원 2등 제8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합격증서
내용 및 특징
1783년(正祖 7) 10월 3일, 正祖李永運에게 생원 2등 제8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합격증서이다.
문무과[大科]가 33인을 뽑는데 비해 생원진사시[小科]에서는 100인을 뽑았는데, 1등이 5명, 2등이 25명, 3등이 70명이다. 이영운은 18살의 나이로 생원시에 2등 제8인으로 합격하였는데, 이는 전체 13등으로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幼學李永運生員二等第八人’을 한 줄로 써서 진사시 급제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는데, 진사시 합격 당시 이영운은 幼學의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영운은 후에 李秉運으로 개명하였다.
생원에 합격하면 이들에게는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이 부여되며, 성균관에 입학해 300일 이상 수학하면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진사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관직으로 나아갈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므로 바로 문과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문과합격자에게 발급되는 홍패에서 생원이나 진사가 아닌 幼學의 신분으로 합격한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백패는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합격 증서로 흰 종이에 쓰며, 연호의 두 번째 글자 위에 ‘科擧之寶’를 찍는다. 경국대전 禮典에 백패에 관한 문서식이 규정되어 있는데 문무과 합격자에게 발급한 홍패식과 유사하다. 다만 합격증서의 색깔과 합격을 뜻하는 용어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무과 합격자에게는 ‘及第’라고 하고,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는 ‘入格’이라고 써서 이들을 구분하였다
李秉運(1766~1841)의 자는 際可이고, 호는 俛齋로, 본관은 韓山이고, 象靖(1711~1781)의 손자이다. 1797년(正祖 21)에 蔭職으로 惠陵參奉에 제수된 후, 咸昌縣監淸安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로 『俛齋集』 이 전한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진옥, 집문당, 1998
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3년 이영운(李永運) 백패(白牌)

敎旨
幼學李永運生員二等第
八人入格者
乾隆四十八年十月初三日
幼學李永運生員二等第八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