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2월 27일에 정조가 이상정을 통훈대부 행병조좌랑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780년(正祖 4) 2월 27일에 正祖가 李象靖을 通訓大夫 行兵曺佐郞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이상정은 1777년 2월 5일에 通訓大夫 行司諫院正言을 제수 받았다가 사직하였다. 그리고 약 3년 뒤에 이 문서가 내려지면서 통훈대부 행병조좌랑에 임명되었다. 통훈대부는 정3품 下階이고, 사간원정언은 정6품직이다. 그리고 병조좌랑은 정6품직이다. 관직명 앞에 行이 붙은 것은 품계는 정3품계이나 관직은 정6품직이기에 行守法에 의거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의 행력에 의거하면 그는 이 직책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사직하여 遞差되었다고 한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품계나 관직을 내릴 때 발급되는 교지이다. 그는 정3품 통훈대부의 품계가 내려졌기 때문에 이 형식의 교지가 발급 된 것이다. 5품 이하는 臺諫의 署經을 거쳐 이조 ․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하고, 문서식도 이조나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임명한다는 의미의 ‘奉敎’를 쓴다. 하지만 4품 이상은 서경을 거치지 않고 왕명에 의해 바로 임명되며 문서식도 문서 첫머리에 ‘敎旨’를 쓴다.
이상정(1711~1781)의 자는 景文, 호는 大山, 본관은 韓山이다. 부친은 李泰和이며 외조부는 密菴 李栽(1657-1730)이다. 그는 退溪 李滉의 학문을 정통으로 계승하였다. 이후 그의 아우인 小山 李光靖(1714∼1789), 損齋 南漢朝(1744∼1809)를 통하여 定齋 柳致明(1777∼1861)으로 핵맥이 이어지고, 다시 寒洲 李震相(1818∼1886), 俛宇 郭鍾錫(1846∼1919)으로 계승되었다. 高山書院에 배향되었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