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영조 47) 2월 18일, 영조가 이완에게 생원 2등 제8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입격증서
내용 및 특징
1771년(英祖 47) 2월 18일에 英祖가 李埦에게 생원 2등 제8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입격증서이다.
大科는 33인을 뽑고 小科는 100인을 뽑는데, 1등이 5명, 2등이 25명, 3등이 70명이다. 이완은 32세에 생원시에 2등 제8인으로 합격하였다. 이는 전체에서 13등으로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幼學李埦生員二等第八人’을 한 줄로 써서 입격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는데, 생원시 합격 당시 이완은 幼學의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완(1740~1789)은 자는 致道, 호는 艮巖이며 부친은 大山 李象靖(1711~1781)이다. 그는 위의 문서가 발급된 해인 1771년에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774년에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통훈대부 행홍문관교리를 지냈고, 1882년에 통훈대부 홍문관전한지제교에 추증되었다.『大山集』간행에 숙부 李光靖(1714~1789), 종형 李㙖(1739~1810) 등과 함께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가학을 이어 名儒로 알려졌다고 한다. 저서로는 『艮巖集』‧『痛慕錄』이 전한다.
백패는 생원진사시[小科] 합격자에게 내리는 합격증서로 흰 종이에 쓰기 때문에 紅牌와 구분하여 백패라고 한다. 그리고 『대전통편』[禮典 ․ 璽寶]條에 의하면 試券과 홍패 ․ 백패에는 ‘科擧之寶’를 사용한다고 규정되어있다. 따라서 위의 문서 역시 연호의 두 번째 글자 위에 과거지보를 찍었다. 『경국대전』[禮典 ․ 白牌式]條에 의거하여 서식을 살펴보면, 처음 ‘敎旨’를 쓰고, 다음 행에 ‘신분某+생원(또는 진사)+몇等第몇人+入格+者’의 형식으로 내용을 기재한 후에 다음 행에 연월일을 기재하고 새보를 찍는다. 또한 합격에 대한 용어도 대과 합격자에게는 ‘及第’라고 하고 소과 합격자에게는 ‘入格’이라고 써서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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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