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윤4월 17일, 영조가 이상정에게 문과 병과에 제28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문과 급제 증서
내용 및 특징
1735년(英祖 11) 윤4월 17일, 英祖가 李象靖에게 문과 병과에 제28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문과 급제 증서이다.
문과에서는 각각 甲科에 3인, 乙科에 7인, 丙科에 23인을 배정하여 총 33인을 뽑도록 하였으나 적합한 인재가 많을 때에는 더 뽑기도 하였다. 이상정은 병과 28인으로 급제하였으므로, 이는 전체 38등으로 합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進士李象靖文科丙科第二十八人’을 한 줄로 써서 문과 급제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다. 문과 합격 당시 이상정은 25살로 진사의 신분이었는데, 바로 지난달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진사라고 쓴 것이다. 이상정은 이 해 3월, 4월, 윤4월 모두 3차례에 걸쳐 東堂試, 進士試, 文科 丙科에 합격하지만 5월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 문서는 문과에 급제한 자에게 내린 것으로 홍패라 불린다. 홍패는 붉은 종이에 쓰며, 『경국대전』 禮典의 홍패에 관한 문서식에 의거해서 작성하며, 연호의 두 번째 글자 위에 ‘科擧之寶’를 찍는다. 小科에 합격한 경우 흰색 종이를 쓰고 入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반면, 문무과의 경우에는 붉은 종이에 及第라는 말을 썼다. 문과에 급제하면 보통 實職에 제수하거나 三館 즉 成均館, 承文院, 校書館에 分館한다. 갑과 1등은 종6품, 갑과 2등과 3등은 정7품, 을과는 정8품, 병과는 정9품을 제수하는데, 보통 갑과와 을과의 경우는 실직에 제수하고, 병과의 경우에는 삼관에 權知로 분관하였다. 이상정은 1736년 3월에 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된다.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자는 景文이고, 호는 大山으로, 본관은 韓山이다. 密菴 李栽(1657-1730)의 외손자로, 이재에게 사사하였다. 이상정은 예로부터 '小退溪'라 불렸을 정도로 退溪 李滉의 학문을 정통으로 계승하면서 18세기 영남지역 유학계를 대표한 인물이다. 『退陶書節要』‧『理氣彙編』‧『讀聖學輯要』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학문적 흐름은 아우인 李光靖과 南漢朝를 통하여 柳致明으로 이어지고, 다시 李震相, 郭鍾錫에게로 계승되었다. 高山書院에 배향되었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