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1월 29일, 김헌재가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딸의 혼사 일정을 늦춰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32년 11월 29일에 金憲在가 보낸 편지이다. 김헌재는 자가 公斌이고, 본관이 豐山이다. 그는 영감댁의 주손으로, 雲齋 金秉璜의 손자이며, 金鼎燮의 아들이다. 생부는 金應燮이다.
김헌재는 자신의 부모님께서 늘 위태로우실 때가 많기 때문에 애가 타고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生家의 어버이께서 건승하고 형제들이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니 다행하다고 하였다. 김헌재는 이후 딸의 혼사 일정을 늦춰달라고 간청하고 있는데, 딸이 나이가 겨우 13세이며 그 발육 상태는 나이에 비해서 더뎌서 조숙한 아이와 비교하면 그저 10세 전후의 외관을 가진 데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더라도 반드시 더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에 김헌재는 상대가 그 늙으신 어버이께 말씀을 잘 드려서 내년 가을이나 겨울까지 늦춰 주기를 부탁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의 형식을 따랐다.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과 행간에 줄을 낮춰서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