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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남세혁(南世赫)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26.4777-20110630.009025700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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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세혁, 김추병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926
형태사항 크기: 29 X 37.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6년 남세혁(南世赫) 서간(書簡)
1926년 7월 24일에 남세혁이 사돈인 김추병에게 보낸 편지이다. 늦더위가 심하여 더욱 상대방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마침 편지를 받고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이어서 대상을 치른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고, 상대방을 비롯한 여러 식구들의 안부도 물었다. 그리고 담제의 일정에 대해서도 물어보면서도 상복을 벗게 될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였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지만 오늘은 어버이의 기일이라서 슬프다고 하였고, 의 어미가 수척해진 것은 그리 염려하지는 않는다고 전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26년 7월 24일, 남세혁이 상대와 상대 가족의 안부를 묻고 담제를 치를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사돈인 김추병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26년 7월 24일에 湖亭 南世赫(1877-1963)이 사돈인 賁石 金樞秉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세혁은 자가 汝明, 본관이 英陽으로, 寧海槐市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김추병은 자가 善應으로, 槐南 金益洛의 장남이자, 霽山 金聖鐸의 주손이다.
먼저 남세혁은 遞便으로 보낸 안부편지가 중간에 전달되지 못했을까봐 염려하였는데 다시 소식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고 하였다. 근래 늦더위가 더욱 심하여 사람을 견디기 어렵게 하니 더욱 김추병의 안부가 궁금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상대의 편지를 받고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받게 되고, 전에 보냈던 편지가 잘 전달되었다는 것을 듣게 되어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다만 상대가 大祥을 치르고 아직 남은 눈물이 먹에 섞여 종이를 적심을 알게 되니 왕왕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처연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했다. 이어 상대 형제와 그 아들 상대의 從氏, 그리고 특히 甥姪의 안부를 물었다. 禫祭를 장차 初丁에 지내려고 하는지 묻고, 담제가 지나면 平服을 입을 터인데, 효자의 망극한 슬픔이 더욱 어떠하겠느냐고 하면서 위로하였다. 남세혁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으나, 오늘이 어버이의 忌日이라서 슬프다고 했으며 날마다 어지러운 일에 골몰되어 있으므로, 北窓의 맑은 바람도 상쾌하지 않다고 하였다. 끝으로 의 어미가 수척해진 것을 자신이 그리 심하게 염려하지는 않는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따로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착명하였다.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6년 남세혁(南世赫) 서간(書簡)

査兄 制座下 執事
湖村 査弟 謹謝狀
省式 因遞之候 慮或爲滯 而無路更探 近日老
炎又甚 令人難堪 未嘗不馳仰憧憧 際玆此老至
爲袖致惠函 奉承平安信息 且聞前便 不虛 欣豁可旣 而第審
援琴餘淚 和墨洒紙 往往使覽者 不覺悽然以涕 嘻
孝之爲德 易感人心 蓋有如是者耶 信後多日 更伏詢
此時
制中棣體候節宣萬支 玉允侍課懋嘉 堂廡各
位 幷保前日否
令從氏丈例添調候 凉生不遠 漸當平復 而甥君之苦
亦非深慮者然 學期臨迫 若不速差 則將奈何乎 此君之
事 每思之 惻然不可忘 而有心無力 空言可慚 故與其
書信而幷絶 渠必謂我頑昧矣 語失倫序
禫祀將以初丁行之否 過此 則冠裳就吉矣 仰惟
孝心罔極之痛 尤當何如 又是換節之時 伏願
强加衛護 無至傷孝也 査弟 奉率依昨 是爲私幸 而
今日 讐辰也 喪餘之哀 不肖猶有彛衷矣 門外皆冗塵也 此心
不能敵於耳目 日事撓撓汨汨矣 北窓淸風 何足以快爽乎
至於母之戌削 弟亦不爲深憂 而奇愛之耳
日間 往覲而歸 大槩如昔 然內眷及年少
終不安心 故不得已以秋成後 撤寓爲計 雖
來 徒費無得矣 可恨 而何哉 餘撥忙走草
不備禮上
伏惟
兄察
丙寅七月二十四日 査弟 南世赫 謝上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