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5월 23일, 김이섭이 무너진 제방으로 농사일에 대해 걱정하고 가대 값을 갚을 일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19년 5월 23일에 金履燮(1876-1958)이 보낸 편지이다. 김이섭은 자가 景厚, 본관이 豐山이다. 그는 洛厓 金斗欽의 손자인 雲齋 金秉璜의 둘째아들이다. 후에 김병호에게 출계하였다.
김이섭은 자신의 형제가 서로 의지하고 있으면서 각자 별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전에 내린 폭우로 제방이 무너져 모가 침수되었는데 유독 자신만이 피해를 입어서 날마다 제방 쌓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하였다. 李福雨가 家垈 값으로 지금 6수를 보냈는데도 1수라고 하면서 상대에게 갚아 주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고 물었다. 또한 崔兄의 貸條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남아 있는 모가 조금씩 끝이 나오고 있으므로, 크게 긴한 일이 없으면 하릴없이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상대가 곧바로 돌아오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맨손으로 객지에 머물 수도 없는 때라고 하였다. 書箱은 지금 농사일이 한창이므로 실어 올 계획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집주인에게 맡겨 두어도 무방하다고 했으며 받지 못한 것은 급히 독촉하여 받아내서 곧바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다만 李兄의 面里와 番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찾을 때에 방해되는 바가 없겠느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이미 받은 것과 받지 못한 것을 상세히 장부에 기록하여 계산하도록 하자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家垈를 이전하는 일이 과연 지번의 변경으로 인해 물려질 것 같기에 다시 날인하여 보낸다고 하였으며, 이복우의 面洞 이름을 후편에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旅體’·‘貴’ 등에 평궐을 써서 상대방을 높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풍산김씨세보』,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