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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김이섭(金履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919.4717-20110630.00632570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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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이섭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19
형태사항 크기: 17.8 X 63.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9년 김이섭(金履燮) 서간(書簡)
1919년 5월 23일에 김이섭이 보낸 편지이다. 장맛비가 너무 오래 내려서 객지에 있는 생활이 괴로울 것이라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일전에 내린 폭우로 제방이 무너져서 모가 잠겼기에 날마다 제방 쌓는 일을 한다고 하였다. 이복우가 집터 값으로 지금 6수를 보냈는데 1수라고 하면서 상대방에게 갚아 주었다고 하는데 그러하냐고 물었다. 중요한 일이 없으면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책은 집주인에게 맡겨 두고 받지 못한 것은 독촉하여 받아내라고 하였다. 다만 형의 주소가 확실하지 않아 돈을 찾을 때에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며 받은 것과 못 받은 것을 상세히 장부에 기록하자고 하였다. 추가하여 기록한 글에서는 집터를 이전하는 일은 번지 변경으로 물려질 것 같아서 다시 날인하여 보내며, 이복우의 주소와 이름을 다음에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19년 5월 23일, 김이섭이 무너진 제방으로 농사일에 대해 걱정하고 가대 값을 갚을 일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19년 5월 23일에 金履燮(1876-1958)이 보낸 편지이다. 김이섭은 자가 景厚, 본관이 豐山이다. 그는 洛厓 金斗欽의 손자인 雲齋 金秉璜의 둘째아들이다. 후에 김병호에게 출계하였다.
김이섭은 자신의 형제가 서로 의지하고 있으면서 각자 별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전에 내린 폭우로 제방이 무너져 모가 침수되었는데 유독 자신만이 피해를 입어서 날마다 제방 쌓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하였다. 李福雨가 家垈 값으로 지금 6수를 보냈는데도 1수라고 하면서 상대에게 갚아 주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고 물었다. 또한 兄의 貸條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남아 있는 모가 조금씩 끝이 나오고 있으므로, 크게 긴한 일이 없으면 하릴없이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상대가 곧바로 돌아오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맨손으로 객지에 머물 수도 없는 때라고 하였다. 書箱은 지금 농사일이 한창이므로 실어 올 계획이 없기 때문에 우선은 집주인에게 맡겨 두어도 무방하다고 했으며 받지 못한 것은 급히 독촉하여 받아내서 곧바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다만 兄의 面里와 番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찾을 때에 방해되는 바가 없겠느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이미 받은 것과 받지 못한 것을 상세히 장부에 기록하여 계산하도록 하자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家垈를 이전하는 일이 과연 지번의 변경으로 인해 물려질 것 같기에 다시 날인하여 보낸다고 하였으며, 이복우의 面洞 이름을 후편에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旅體’·‘貴’ 등에 평궐을 써서 상대방을 높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풍산김씨세보』,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9년 김이섭(金履燮) 서간(書簡)

漠然阻積 霖雨支離 念
君旅苦 不覺黯傷 謹
詢潦熱
旅體萬旺 想尙住洞屋 其苦
可想 而或有新設事務之道
否 百爾馳神 不能暫弛于
中爾 從 兄弟相依 各亦無警
日前暴雨 潰防浸秧 可謂
偏被 日事開沙築防之間 良
苦已耳 貴第節均安 是
足奉道 李福雨家垈價 今送
六首 謂以一首 報給于君 果
否 未見君來書 甚訝甚訝 而崔
兄貸條 姑未見到耶 不來
入用于田畓買用 方事苦企
幷爲詳示之 切仰切仰 殘移處
裡間 似稍稍出梢矣 如無大
緊係 則不可無事留延 卽爲
浩還 是爲上策 況不可赤手
旅留之時乎 書箱 顧今農方
運來無計 姑任置於家主 亦
無妨 而殘捧未捧 速速催捧
卽爲還歸 切仰切仰 第李兄
面里番地未詳也 故覓金
時 倘相礙耶 是慮是慮 當用之
用 已捧未捧 昭詳致簿 以爲
面計之地 如何如何 餘姑不備 謹
己未五月卄三 履燮 拜拜
今見禧燮從 得聞昨
書中安否云 甚慰甚慰
家垈移轉 果以番地
變更 似爲退却 玆
更捺印以送 書頭
捺印 亦甚模糊耳
李福雨面洞號
後便 指示如何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