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2월 22일, 류연갑이 상대의 상사를 위로하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 위하여 김익락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18년 12월 22일에 瓠石 柳淵甲(1850-1919)이 槐南 金益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연갑은 자가 景禹이고, 본관이 全州로, 石下 柳建鎬의 아들이다. 김익락이 류건호의 사위이므로, 류연갑과 김익락은 처남매부지간이 된다.
먼저 류연갑은 타는 듯한 부모의 情으로 어떻게 가슴 찢어지는 슬픔을 감당하겠느냐며 김익락을 위로하였다. 자신은 지척에 있으면서도 김익락을 위문하지 못하였으니 매우 박정한 행태였다고 하면서 양해를 부탁하였다. 이어 요즘 세상에서 送終의 의식을 매우 황급하게 지내는데, 김익락이 마음을 추슬러서 기력이 상하는 데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하였다. 또한 조카와 김익락의 어린 손자의 안부도 물었다. 류연갑은 10월 이후로 전염병 기운에 침범을 당하여 노소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문밖의 일에는 여가가 없었다고 하였다. 근래 들어 겨우 머리를 들 수 있게 되었으나, 堂內에 상사를 당한 것이 한두 건이 아니고 자신의 형님은 소란을 겪은 후에 기력이 상하였다고 하였다. 류연갑은 병을 겪은 후에 運筆하기가 곤란하여 아이를 시켜 이 편지를 대필케 한다고 하면서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마음이 끌려서 슬픔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옛사람이 경계한 바이니 부디 마음을 넓게 가지라고 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회문의 형태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사연을 다 쓰고 중간에 추록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